[홍현종의 경제 프리즘] 버냉키 시대 첫 시험대


권위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워싱턴 청사 앞에 썩은 야채 꾸러미들이 날라 든 건 지난 1980년대 초. 폴 볼커가 FRB 의장에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다. 1979년 7월 볼커는 FRB 수장에 오르자 마자 금리를 단박에 2.5배나 올려버린다. 5%대였던 금리가 최고 18%까지 치솟으며 미국의 가구당 소득은 급격히 쪼그라들었고 업계의 반발은 거셌다. 그러나 고질적으로 뿌리 내린 미국 경제의 두자리수 물가상승을 잡기 위한 볼커의 초강경수, 인플레 싹을 자르고 경제의 체질을 바꿔놓겠다는 그의 의지를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고통 박사’(Mr. Pain). 볼커에게 따라다닌 별명이다. 앨런 그린스펀. 볼커와 동종(同種)의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 그의 진가는 역대 대통령들과 번번히 맞짱을 뜬 일화에서 엿볼 수 있다. 레이건에서부터 부시에 이르기까지 특히 선거와 관련 정치적 판단을 앞세운 대통령의 금리인하 요구를 그린스펀은 타협없이 고집스럽게 거절했다. 그 결과는 세월이 흘러 나타났다. 인플레 없는 고도 성장. 미국경제가 써 나간 새 경제 이론이다. 실정(失政)이 결코 적지 않았음에도 그 공적을 평가 받고 있는 두 고집불통 영감님들의 공통점-한 시대를 풍미하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경제계를 쥐락펴락한 카리스마다. ▦ “영웅이 지배하던 FRB 시대는 끝났다” 미국의 시사주간 비즈니스위크의 최근 보도다. 잡지의 이 같은 주장의 근거는 시대 상황적 측면도 있지만 강골(强骨)의 전임자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온건한 버냉키 FRB 의장 지명자의 개인 성향에 따른 이유가 크다. 그린스펀과 같은 인플레에 대한 선제적 방어론자이면서도 경제 운용의 방법론에선 적지 않은 차이가 난다. 우선 FRB가 경제 전반에 간섭하는 데 반대 입장이다. 그린스펀이 감세안 등 통화정책과 무관한 사안들에 자신의 입장을 표출해 온 것에 반해 버냉키는 특히 정치색을 띠는 것에 반대하며 조세ㆍ지출 정책 등에 특정 견해를 삼가는 것을 기조화 하고 있다. 개인적 신념 외 실물면에서 버냉키의 경험 부족을 FRB 파워 감소로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다. FRB 의장 이전 그린스펀은 월가에서 직접 금융ㆍ경제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며 실물경제를 직접 체득했고 포드 행정부 시절부터는 대통령 경제자문역으로 관료로서의 실무경력도 쌓았다. 이에 비해 버냉키는 학자로서 더 높은 명성에 관료로서의 경험은 금년 6월 백악관 경제자문회의(CEA) 의장을 지낸 것이 사실상 유일하다는 점이 그 이유다. ▦이같은 점 말고도 FRB의 카리스마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란 주장의 근거는 급격히 바뀌고 있는 국제 경제의 환경 변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규모와 힘이 날로 커져 가는 국제금융자본을 FRB가 통제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천문학적 재정 적자를 중국 일본 등 해외투자로 보전해가는 미국의 현실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의 목소리를 약화시킬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국내외적으로 산재한 이런 저런 요인들 속에 당장 버냉키 앞에 걸려있는 문제는 물가관리 목표제, 즉 인플레 타깃팅제다. 세계적 추세라는 대세론에 따른 제도 도입의 필요성도 필요성이지만 중앙은행의 힘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인플레 타깃팅제의 도입은 제도를 통한 ‘보완 시스템’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FRB 의장 개인의 통찰력과 감(感)에 의존하던 시대는 가고 투명한 제도의 틀로 통화 정책을 운영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얘기다 볼커-그린스펀-버냉키의 계보로 이어지는 미 중앙은행의 역사는 그대로 세계 경제사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FRB 수장의 ‘경제대통령’ 시대가 끝났다는 세간의 평가 속에 통화정책의 지휘봉을 새로 잡게 되는 버냉키가 그려가는 경제 지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당장 그 첫번째 시험대에 올라있는 사안 중 하나가 인플레 목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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