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본관 15층 회의실.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 참석한 한 금통위원은 "통화정책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봤을 때 기준금리 방향과 조정폭 모두를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지금이) 기준금리 조정폭 문제를 검토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1999년 금리목표제를 시행한 후 매번 0.25%포인트 또는 그의 배수로 금리를 조정해왔다. 그런데 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금통위원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8월 금리를 인하했을 때도 한 금통위원은 0.2%포인트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 바 있다. 금통위 내부에서 불문율이었던 0.25%포인트 단위 움직임을 되돌아보자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금통위가 당장의 금리 조정에서 보폭을 수정할 수 있을까. 한은 안팎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은의 한 고위관계자는 "0.25%포인트 단위로 움직여야 시장에 충격도 안 주고 금리 조정에 따른 효과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위관계자도 "채권거래용 컴퓨터의 자판도 0.25%포인트에 맞춰져 있어 혼란이 예상된다"며 "이는 세계적인 관행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은 출신인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금리가 1% 혹은 1.5%까지 내려갔을 경우 내외 금리 차에 의한 자본유출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때 가서야 보폭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0.25%포인트 보폭은 세계적인 관행이다. 1990년대 앨런 그리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경기를 조절하는 방안을 고민하다 금리 조정폭을 1%포인트가 아닌 0.25%포인트씩 네번에 걸쳐 움직이는 일명 '베이비스텝'을 고안했다.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이를 따르고 있다. 다른 스텝을 구사하는 곳은 유럽중앙은행(ECB), 헝가리·대만·체코·일본 등인데 ECB·체코·일본 등은 금리가 제로 수준이라 0.25%포인트씩 움직일 수 없는 처지다.
보폭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제법 크다. 현재는 금리가 낮은 상황이므로 보폭도 작아져야 한다는 논리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조정폭을 쪼개는 게 나쁠 것은 없다"며 "한은의 경기관점 등에 대한 인식을 시장에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은이 통화정책 파급효과에 대한 연구 등이 0.25%포인트씩 조정하는 것에 맞춰져 있어서 보폭 조정이 어렵다고 하지만 현재 선진국 중앙은행은 모두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펴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