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헌재 권위에 복종을

지난 2일 대통령 탄핵심판의 2차 변론이 열린 헌법재판소 1층 대심판정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이미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를 한 자도 빠짐없이 그대로 읽어야겠다는 국회 소추위원측과 신속한 재판진행을 위해 요약해달라는 대통령 대리인단측간의 설전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요약해서 구두변론하는데 저쪽은 문서를 모두 읽고 있다.”(대통 령 대리인단) “시청각을 전부 동원해서 구두변론하는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깝다.”(국회 소추위원 대리인단) 3일 전에 재판부에 서면으로 제출한 답변서를 소추위원측 변호사들이 돌아 가며 낭독하다 보니 6시간여의 재판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당초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절차와 세 가지 탄핵사유가 적법하고 타당한지를 놓고치열한 법리공방을 기대했던 취재진과 방청객들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감추 지 못했다. 이를 지켜본 9명의 헌법재판관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초유의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중차대한 소임을 맡은 헌법재판관들은 ‘살이 쪽 빠졌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재판준비에 여념이 없다 한다. 소추위원측은 혹시 이들 재판관들이 자신들의 답변서를 제대로 못 읽었을까 봐 재판정에서 ‘낭 송 서비스’를 했는지 묻고 싶다. 사실 이날 재판에 앞서 소추위원측은 변론 연기를 강력 희망했다. 오죽했으면 이날 윤영철 재판장이 변론 개시를 선언했음에도 상식에 어긋나게 변 론 연기를 장황하게 주장했겠는가. 결국 답변서 읽기는 법정 필리버스터(지연전술)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소추위원의 불참 역시 그렇다. 김기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선거운동을이유로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또 탄핵심판이 ‘횃불시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총선 이후로 변론을 연기해달라고 했다. 헌재는 헌법에 따라 탄핵심판과 위헌법률 심사를 하는 최고 권위의 재판부 다. 이런 헌재를 향해 법과 무관한 총선을 이유로 소추위원이 불참하고 사 회 분위기가 불리하다며 변론 연기를 고집하다 국회에서나 볼 수 있는 지연전술이나 쓴다면 이는 헌재를 무시하는 무례한 행동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은 것 역시 헌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비친다. 양측은 겸허하고 성실하게 탄핵심판에 임해야 한다. 철저한법리공방을 통해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재판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헌재의 권위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모범적인 자세는 기본이다. 그럴 때만이 국민들은 헌재의 결정이 어떤 쪽으로 나든 ‘법의 명령’을 엄숙한 마음으로 받들 것이다. <저작권자ⓒ 한국i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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