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치료제를 출시한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 에프씨비파미셀. 넉넉지 않은 자금으로 '꿈만 먹고' 끊임없이 연구개발비를 지불하던 이 회사는 올해 처음으로 줄기세포 치료 분야에서 6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제품 출시 이후에도 시중 금융권의 문턱을 넘기가 여전히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대규모 생산시설을 구비하고 있는 여타 제조업에 비해 연구개발(R&D) 비중이 높은 녹색기업은 '담보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시중 금융권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에프씨비파미셀은 최근 모기업인 에프씨비투웰브와 합병하며 상장사로 이름을 올리자 정책자금을 이용할 수 있는 '중기 지원 요건'에서도 제외됐다. 때문에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시설자금 명목으로 대출 받았던 5억원의 자금을 만기까지 7년이나 앞둔 상황에서 다급하게 상환하며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에프씨비파미셀 관계자는 "금융권이 말로만 녹색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외치고 있을 뿐"이라며 "녹색기업은 금융권에서 '왕따'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부터 녹색산업이 미래 한국의 먹거리를 책임질 전략산업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다르다. 녹색기업 육성이라는 '구호'만 요란할 뿐 시중 금융권과 정책기관에서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것이 이들 녹색기업의 현실이다. ◇'생색내기'에 그친 녹색기업 지원=시중은행은 정부의 성화에 못 이겨 수년 전부터 녹색기업 지원을 위한 대출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실적은 전체 중소기업 대출 비중의 1%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생색내기용'에 그치고 있다. 우리은행은 ▦우리그린솔라론 ▦우리LED론 ▦그린파트너론 ▦우리사랑 녹색기업대출 등 시중은행 중 가장 다양한 녹색기업 대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실적을 따져보면 6월 말 기준 대출잔액이 1,502억원으로 중소기업 대출(59조7,390억원) 비중의 0.25%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다. 녹색 중소기업의 높은 연체율 등을 이유로 녹색기업대출 상품 운용을 중단한 은행도 있다. 하나은행은 2008년부터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는 발전사업자에게 시설자금을 지원하는 기업대출인 '솔라론'을 운용하다 2009년 판매를 중단했다. 하나은행 측은 "태양광 시장이 기대와 다르게 침체를 겪으며 대출 수요가 많지 않았고 대출 기업의 연체율이 높아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며 "현재는 녹색기업과 관련한 추가 대출 상품 출시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리스크 회피 차원에서 까다로운 요건을 내거는 행태도 녹색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 시중은행은 신용등급 B등급 이상에 공장이나 부동산 등의 담보, 각종 녹색기업 인증 등을 대출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연구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거나 이제 막 제품 출시를 준비한 녹색기업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녹색기업의 기술력과 미래 성장성을 대출 심사에 반영하려 해도 창구 직원이 해당 기술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결국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담보 여력 등을 가장 먼저 보게 된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대출 관행은 정책 금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신용보증기금은 10월 말 기준 녹색기업을 위해 모두 4조4,000억원을 보증했다. 이 중 70% 이상이 공장부지나 생산시설을 보유해 담보가 탄탄한 녹색제조기업에 돌아갔다. ◇좌초위기 처한 녹색금융 활성화 방안=정부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녹색금융 활성화 방안'도 정부와 시중 은행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녹색예금ㆍ채권의 이자소득세(15.4%)를 면제해주는 조세특례법을 발효했다. 녹색기업에 사업자금을 지원하고 은행권에 '비과세 녹색예금 대출' 상품 출시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재까지 녹색예금이나 채권상품을 출시한 은행은 단 한 곳도 없다. 녹색예금과 채권 판매금액의 60%를 의무적으로 녹색인증기업에 대출해주고 이를 어길 경우은행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을 놓고 정부와 은행권이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정부의 녹색인증 기준을 충족하는 녹색기업 숫자가 미미해 60% 대출 기준을 충족하기가 어려워 정부 측에 지속적으로 (조특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며 "녹색기업 대출 부실 위험이 높은 것도 은행이 녹색예금이나 채권상품 출시를 꺼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대해 "녹색인증기업 숫자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취하고 있어 정책 자체가 별다른 진전 없이 표류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와 시중 금융권, 기업이 리스크를 분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현재의 녹색기업 육성방안은 사실상 은행권에 모든 역할을 떠넘기고 있는 측면이 크다"며 "정부와 은행이 함께 일정 금액을 보증기관에 출연해 신규 보증재원을 마련하는 등 녹색기업에 대한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