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 가보니…

산·학·연 클러스터… 노키아등 입주 300여社협력 실시간 기술혁신 눈길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 전경

핀란드 수도인 헬싱키 서쪽에 위치한 오타니에미(Otaniemi) 사이언스 파크. 지난해 9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 방문단이 350여차례나 찾는 바람에 우리에게 낯익은 곳이다. 울루 테크노폴리스와 함께 양대 산ㆍ학ㆍ연 클러스터로 핀란드 전매 특허인 ‘혁신’의 상징이다. 이름부터 ‘과학공원’이라 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베이요 일마비르타 오타니에미 국제혁신센터(OIIC) 소장은 “대학ㆍ연구소ㆍ기업들이 기술 혁신을 위해 치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협업 체계를 갖춘 게 다른 나라 산업단지와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곳에는 헬싱키공과대학, 핀란드 국립기술센터(VTT), 국립기술개발청(TEKES) 등이 있고 노키아ㆍ에릭슨 등 300여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공계 대학, 연구소, 기업들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아이디어와 기술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기술 혁신도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 단지의 벤처기업 생존율은 90%에 이른다. 페카 율라 핀란드경제연구소(ELTA) 연구담당 이사는 “핀란드 산업 클러스터의 특징은 상품화와 소비화를 고려해 기본연구가 이뤄진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변화는 고려하지 않은 채 기술 확보에만 초점을 맞추는 우리나라 정부의 연구개발(R&D) 정책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R&D 투자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이지만 투자 효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오타니에미의 이 같은 성과는 중앙집중 방식의 한국과 달리 R&D가 각각 회사나 대학의 필요에 따라 이뤄지는 데서 나온다는 게 현지 관계자의 설명이다. 요우니 혼카바아라 오타니에미 마케팅 최고경영자(CEO)는 “대학 교수들이 사이언스 파크에서 직접 일하거나 반대 사례도 많다”며 “정부는 R&D 관련 서비스나 교육 등 큰 그림에만 관여하고 개별 R&D는 독립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된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국내에 알려진 것과 달리 대학의 순수 기초과학 연구는 그 자체로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일마비르타 소장은 “대학의 본래 기능은 교육과 연구 기능으로 지나치게 기업에 종속되면 오히려 혁신과 신기술 발전에 지장을 준다”며 “단지 오타니에미와 같은 클러스터는 응용과학이나 상품화를 강조하는 곳으로 대학 자체와는 별개”라고 말했다. 대학이 기업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특히 산업 클러스터를 지역균형 발전의 도구로 활용하는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지역 클러스터나 혁신 도시 등을 통해 지역 발전을 이루려는 참여정부의 시각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혼카바아라 CEO는 “핀란드에서도 지방 정치인들의 요구 탓에 클러스터가 20여개나 세워져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국내총생산(GDP)의 50%를 차지하는 헬싱키가 부유해지면 핀란드 전체도 부유해진다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르키 카스비 핀란드 국회의원도 “인구가 500만명밖에 안 되는데 종합대학이 20개, 전문대학이 34개나 된다”며 “자원 낭비 요인인데도 지방 정치인들의 반대 때문에 줄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핀란드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 대해서도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일마비르타 소장은 “핀란드에 클러스터가 발전한 이유는 땅은 넓은데 인구는 적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핀란드 클러스터의 강점은 단순히 산ㆍ학ㆍ연이 몰려 있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기술 네트워크 형성, 민간 부문의 투자환경 개선, 인력공급 등을 통해 일선 기업이 자유롭게 기술 개발에 나설 수 있는 풍토에 있다는 뜻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