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국회 자위대 이라크 파견 승인안 심의에서 연일 진땀을 흘리고 있다.27일 중의원 본회의 질의에서 민주당의 `고이즈미 저격수` 하라구치 가즈히로(原口一博) 의원은 “일본 국민은 일본 청년의 피를 흘려서까지 다른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회복시킬 생각은 없다”며 “무리해서 미국, 유럽과 똑같이 하려는 것은 잘못”이라고 발언했다.
그러자 자민당 의석으로부터는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야유가 졌고, 하라구치 의원이 즉각“1993년 자위대 캄보디아 파견 때 우정성 장관이던 고이즈미씨가 국회에서 했던 소신 답변을 그대로 읽은 것”이라고 되받아 치자 고이즈미 총리와 자민당 의원들은 다시 머쓱해졌다.
답변에 나선 고이즈미 총리는 “10년전엔 피를 흘려서까지 국제공헌을 할 상황이 아니고 헌법에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이라며 “이번도 일본이 전투행위에 참가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어 “돈만 내면 되는 게 아니다. 일본도 땀을 흘릴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으나 캄보디아에서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보다 이라크 파견이 명분이 약하고 위험도가 훨씬 높은 것은 명확해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도 민주당 우부카다 유키오(生方幸夫) 의원은 “총리는 너무 미국편을 들고 있다”며 “일본 외교는 미국 추종주의인가, 유엔 중심주의인가”라고 몰아붙였다.
화가 난 고이즈미 총리는 “현실적으로 일본에 위기가 발생할 경우 유엔은 유엔군을 보내 침략을 막아주지 못한다”며 “일본은 혼자서 평화와 안전을 확보할 수 없는 만큼 미일 안보조약을 통해 동맹을 맺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답변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 유엔 개혁과 유엔중심 외교를 주장하고 있는 일본의 입장에 뒤늦게 생각이 미친 고이즈미 총리는 “미일동맹과 국제협조의 양립이 일본외교의 기본”이라고 답변을 보충했지만 평정을 잃어 속내를 너무 드러냈다는 인상을 주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