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2월 19일] 증시의 제노포비아

다른 것은 불편하다. 집단 내부의 일체감을 높이는 효과도 있지만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낯선 것을 보면 심장은 아드레날린을 쏟아낸다. 처음에는 경계의식으로 출발하지만 이내 혐오 또는 공포로 발전한다.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이런 심리를 잘 표현한 단어다. 영한사전에는 그저 '외국인 혐오'라고 나오지만 원래 의미는 이보다 넓다. 각종 영영사전을 찾아보면 예외 없이 '외국인에 대한 증오 또는 공포'라고 풀이돼 있다. 접촉에 비례해 증오·공포도 늘어 제노포비아는 흔히 증오의 형태로 표출된다. 외국인은 어차피 자신의 나라를 떠나면 수적으로 열세다. 그래서 무차별적 폭력의 희생자로 전락할 때가 많다. 이런 현상은 선진국ㆍ후진국을 가리지 않는다. 독일ㆍ러시아 등지에서 스킨헤드들이 터키인이나 동양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원주민들이 중국이나 인도 사람의 상점을 약탈한다. 아이러니지만 '세계화'와 '제노포비아'는 비례관계다. 지금은 자신이 원하고 능력만 허락되면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시대다. 이른바 세계화된 세상에 살고 있다. 좋은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면 지구 반대편 과테말라에서 목숨을 걸고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접촉이 늘어나다 보니 갈등과 증오도 확대된다. 외국인 숫자가 아주 적을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외국인 수가 늘어나면 달라진다. 자신의 생활권이나 이익을 위협하는 침입자로 간주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단 외국인 수가 크게 늘었다. 연간 외국인 관광객이 600만명, 상주 외국인은 100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이주노동자는 무려 40만명에 이른다. 일요일에 대학로 근처로 가보면 한글 간판만 없다면 '이곳이 필리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갖게 될 정도다. 한국의 제노포비아 현상이 오히려 심하다는 비판도 많다. 이중적 성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백인은 한수 접어주지만 동남아 출신 외국인들은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 이들은 국내에서 주로 3D업종에 종사한다. '우습게 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증오 수준을 넘어 인권유린도 자주 일어난다. "싸장님, 나빠요"라는 개그맨의 외침이 이를 잘 웅변한다. 제노포비아 현상은 증시에서도 나타난다. 단 증시에서는 '증오'보다는 '공포'의 성격이 짙다. 외국인들은 증시 흐름을 좌우하는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외국인이 사면 주가가 오르고 팔면 주가가 곤두박질 친다. 지난해만 해도 '제노포비아'라기보다는 '제노매니아(xenomaniaㆍ외국인 열광)'에 가까웠다. 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증시는 큰 폭으로 반등했다.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의 은행산업 규제, 중국의 긴축 움직임, 유럽의 재정위기 등 해외 악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외국인들이 매도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올 들어 1월 첫째 주를 제외하곤 지난주까지 5주 연속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번주 들어 다시 순매수로 돌아섰지만 언제까지 이런 기조가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외국인 매매 확대 해석 말아야 외국인들의 매물이 늘어나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똑같은 외부 악재에 도 한국 주가가 더 큰 폭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물론 이런 주가 급락에는 외국인 매물의 영향도 크다. 하지만 상당수 투자자들이 "외국인 매도로 주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서둘러 주식을 처분하겠다"며 앞다퉈 매물을 내놓은 바람에 낙폭을 키운 측면도 강하다. 외국인이건 국내의 개인투자자건 배당 수익과 매매 차익을 얻기 위해 주식을 사고판다. 합리적이고 냉정한 투자자만이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외국인 매매 동향을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확대해석은 금물이다. 제노포비아와 제노매니아는 합리적 투자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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