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악당들이 똑똑해 진다

인공지능 능력 부여, 능동성·독립성 확보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오늘날의 비디오게임은 컴퓨터공학은 물론 생체공학, 유체역학 등 첨단과학에 의해 한층 실감나고 흥미롭다. 하지만 이처럼 화려한 영상에서 느껴지는 게이머들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하나있다. 바로 ‘멍청한 악당’들이다. 실제 최근 들어 리얼한 그래픽과 탄탄한 스토리 라인으로 무장한 대작게임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지만 게임 속에 등장하는 악당들의 지능은 10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것 없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정형적이고 패턴화된 움직임을 반복하는 것. 이는 대다수 액션 및 슈팅게임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 패턴을 읽어내기만 하면 시쳇말로 17대 1로 싸워도 웃으며 이길 수 있을 정도다. 이에 전 세계 유명 게임제작사들은 현재 악당들이 각각의 상황에 합리적,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AI)을 부여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국적 게임개발사 유비소프트의 신작게임 ‘어쌔신 크리드(Assassin's Creed)’를 개발한 마티유 마제롤 수석 엔지니어는 “게이머들은 이제 좀 더 똑똑한 적들과 싸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이 요구에 발맞춰 앞으로의 악당들은 인공지능의 힘으로 캐릭터들끼리 독립적,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게임 캐릭터들에게 인공지능을 제공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실감나는 의사결정 능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최고의 로봇 공학자들이나 사용하는 고도의 논리이론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미묘한 문제는 따로 있다. 게이머들의 바람과 달리 게임업체들은 완벽한 인공지능이 아닌 미숙한 인공지능을 구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절대로 죽지 않는 천하무적 악당의 탄생을 막기 위해서다. 실제로 어쌔신 크리드의 경우 개발 초기에 현 기술로 구현 가능한 최고의 인공지능을 탑재했지만 악당들이 기존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게이머를 제압하자 인공지능의 수준을 낮춰 제품을 출시했다. FPS게임 ‘브라더스인암즈:헬스하이웨이’를 개발 중인 유비소프트의 프로그래머 닐 존슨도 “인공지능 능력을 지닌 적들은 매번 너무 정확하고 치명적인 조준사격을 하기 때문에 총알이 주인공 캐릭터의 발 근처를 맞추도록 정확도를 떨어뜨려야 했다”며 “게임에서는 인공지능이 자연스럽게 표적을 놓치도록 하는 기술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지금이 인공기능 기술 적용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이미 인간의 눈과 손을 능가하는 인공지능 적용이 가능한 만큼 게이머들이 이 미숙한 인공지능에 적응하는 즉시 악당들의 인공지능 수준도 나날이 높아지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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