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연폭포는 천마산과 성거산을 흐르던 계곡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는데 그 모양이 바가지를 닮아 박연폭포라 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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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같은 박연폭포엔 얼음 뚫는 겨울 낙수만
[리빙 앤 조이] 개성관광'개성금강'이라 불리는 범사정~대흥산성… 수라상 부럽지 않은 11첩 반상 '별미'
개성=글 서은영 기자 supia927@sed.co.kr
사진 김면중 기자
박연폭포는 천마산과 성거산을 흐르던 계곡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는데 그 모양이 바가지를 닮아 박연폭포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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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남짓이었다.
서울과 개성을 잇는 80여㎞의 길을 차로 달리는 데는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남과 북을 가르는 군사 분계선에는 삼엄한 경계와 긴장감이 감돌 것이라는 예상은 실제와 달랐다. 길옆 가로등 허리 부분 색깔이 노랑에서 파랑으로 바뀌는 것 외에는 버스가 북한에 들어섰다는 걸 알려주는 표지는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남과 북은 정말 맞닿아 있었다.
북측출입사무소에서 입경 소속까지 마치고 나오면 북측안내원 2~3명이 함께 버스에 올라 개성공단과 개성의 역사, 전설 같은 것을 소개한다.
남측 공단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개성공단을 지나 30여분을 달려 개성 시내에 들어선다. 하늘색, 에메랄드색으로 칠해진 단층 건물과 낡은 학교, 가게들이 비현실적으로 펼쳐진다. 드문드문 길을 걷는 사람들도 보이고 건물 사이 사이로 몸을 숨기고 12대 버스 행렬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생경한 창밖 풍경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싶지만 버스 이동 중 그리고 관광지 이외의 장소에서 민간인, 건물 등의 촬영이 금지돼 있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되새겨야 했다.
▦볼거리=오전 일정은 황진이, 서경덕과 함께 송도삼절로 꼽히는 박연폭포와 폭포 뒷길로 이어지는 관음사를 둘러보는 코스. 이후 개성 시내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정몽주의 집터인 숭양서원, 선죽교, 고려박물관(고려성균관)을 돌아보는 것이 전체 일정이다.
개성 시내에서 북쪽으로 27㎞를 달리면 박연폭포에 닿는다.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곳은 북측 상점. 따뜻한 차와 과자, 음료 등을 판매하는데 곱디고운 북한 여성들이 물건을 연신 권한다.
매점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 가면 병풍처럼 펼쳐진 박연폭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처음 본 이는 그 거대함에 놀라고 절벽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에 놀란다. 천마산과 성거산을 흐르던 계곡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는데 그 연못의 모양이 바가지를 닮았다 하여 박연폭포라 이름 지어졌다. 아래로 흐르는 37m의 낙수는 여름철에 비해서는 유량이 부족하여 그 폭이 5m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폭포수 아래 형성된 얼음장을 뚫고 흐르는 모습이 ‘절개’의 이미지와 맞닿는다.
폭포 바로 앞 용바위에는 황진이가 머리채에 먹을 묻혀 남겼다는 초서체의 글씨가 또렷하게 남아있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의시은하락구천(疑視銀河洛九天)’ 뜻을 풀어보면 ‘나는듯 흘러 곧게 떨어진 물이 3,000척이나 되니, 하늘에서 은하수가 떨어지는지 의심스럽구나.’
폭포 서쪽 기슭을 따라 오르면 범사정이라는 정자와 고려 때 지은 대흥산성, 성의 북문에 닿는다. 북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바가지 모양의 폭포수 뒷 자태도 감상할 수 있다. 정자에서 북문에 이르는 길을 옛사람들은 ‘개성금강’이라 불렀는데 특히 가을철에는 금강산에 들어온 듯한 신비감을 준다는 데서 유래했다.
북문을 통과해 850m를 거슬러 올라가면 관음사 대웅전에 이르는데 970년 법안국사가 가져다 놓았다는 관세음보살 좌상을 대웅전 옆 관음굴에서 볼 수 있다.
개성 북부 관광을 마치면 다시 시내로 들어서는데 이때 개성을 품고 있는 송악산(489m)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송악산은 만삭이 된 어머니의 형상으로 머리를 풀고 드러누워 슬하의 개성을 품고 있는 듯하다. 그 갈래 중 도심으로 뻗어나온 것을 子(아들자) 자를 써 자남산이라 부르며 자남산의 남대문쪽 끝자락에 점심식사를 할 ‘통일관’이 있다.
이곳은 놋으로 만든 반상기에 11가지 반찬을 담아 내는 전통개성음식점이다. 11첩 반상에는 이면수 구이와 더덕, 묵, 돼지고기볶음, 달걀 장조림, 도라지생채, 오이나물, 감자전, 김튀기, 약과, 닭곰탕이 함께 나오는데 대체로 맛이 담백하다.
통일관 바깥으로 나오면 50여m 앞에 개성시내가 펼쳐진다. 창을 사이에 두지 않고 가장 근접하게 일반인들의 생활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이나 시내쪽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를 엄두는 내지 못 한다. 남측, 북측을 막론하고 안내원들은 모두 “시내 쪽을 찍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 못 한다”며 엄포를 놓는다.
오후 일정은 고려 충신 정몽주의 집터 ‘숭양서원’ 방문으로 시작된다. 1573년 개성유수 남응운이 유림들과 협의 끝에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고 아울러 서경덕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 문충당을 세웠고 1575년 국가 공인 서원으로 승격됐다고 전해진다.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피살됐던 선죽교는 듣던대로 붉은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돌의 붉은 기운은 실제 정몽주의 핏자국이 아니라 화강암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깔이다. 처음에는 선지교라 불렀다가 정몽주 피살 이후 다리 주위에 대나무가 돋아났다 하여 선죽교로 개칭됐다.
현재 선죽교는 난간으로 막혀 있어 새로 놓은 돌다리를 이용해 건너야 한다. 다리 옆에는 명필 한석봉의 필체가 새겨진 비각 등 3개의 추모 비석이 있으며 길 건너편 표충각 안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는데 강직한 충신의 원혼을 달래고자 1740년 영조, 1872년 고종이 각각 세운 것이다.
마지막 일정은 고려박물관. 고려시대 성균관의 건물과 부지를 이용하여 88년 개관하였으며 1,0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마당에는 1000년을 버티고 선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30여m로 우뚝 솟아 성균관의 오랜 역사를 말해줄 뿐이다.
▦가는길=오전 5시50분(계동ㆍ광화문ㆍ마포구청역) 오전 5시30분(잠실운동장ㆍ압구정)에 셔틀버스가 출발한다. 개인차량을 이용하더라도 임진각역에 차를 세운 후 셔틀버스를 타고 오전 7시까지 남측출입사무소(도라산)에 도착해야 출경 수속을 밟을 수 있다.
개성관광은 가맹여행사를 통해 신청이 가능하며 1인당 18만원이다. www.ikaesong.com
입력시간 : 2008/01/09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