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4월26일] '대포왕' 크루프
권홍우
유산이라고는 파산한 공장과 종업원 5명. 14세 소년은 이를 악물었다. 은식기를 처분해 급여를 지급한 적도 있다. 60여년 후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종업원은 2만명으로 불어나고 회사는 세계 최고의 제철소가 됐다. 그가 만든 대포는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연파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대포왕’ 알프레드 크루프(Alfred Krupp, 1812.4.26~1887.7.14), 오늘날 18만여명 종업원이 매출 485억달러(2005년)를 올리는 독일 티센크루프의 실질적인 창업자다.
크루프 가문이 역사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587년. 전염병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재산을 사들여 에센 지방의 갑부로 떠오른 무역업자 아른트 크루프가 시초다. 질병으로 쌓은 가문의 부는 전쟁이 불려줬다. 총기제조업을 시작할 즈음 터진 30년전쟁으로 돈방석에 앉은 것. 19세기 초반 가문의 재산은 4개의 탄광과 제철소ㆍ총기 공장으로 불어났다.
크루프의 번창은 알프레드의 아버지 대에서 끊겼다. 설비투자 확대가 화근. 무너진 가업을 이어받은 소년 알프레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최신공법인 ‘베세머 제강법’을 재빨리 도입하고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한 덕분이다. 명성은 미국에도 알려져 대륙횡단철도 선로의 대부분이 크루프 제품으로 깔렸다.
정작 크루프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대포. 프로이센과 독일제국의 막강한 군사력에도, 히틀러의 재군비에도 크루프사의 총과 대포는 늘 따라다녔다. 2차 대전 직후 해체 위기의 크루프를 살려준 것도 ‘냉전’이다.
질병과 전쟁으로 돈을 번 가문이 420여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바탕은 노동자에 대한 배려. 종업원들을 위해 주택과 여가시설ㆍ교회 등을 지원한 알프레드는 ‘노동자들의 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다.
입력시간 : 2006/04/25 1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