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쓴 소리’로 불리는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파리 발언’을 놓고 인터넷 게시판이 시끄럽다.
박 회장은 지난 4일 국제상업회의소(ICC) 회장으로 선출된 뒤 파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경제는 백약이 무효한 상태인데도 정부는 기업을 옥죄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를 놓고 “‘기업만능주의’에 빠진 고집스런 자본가”라는 비난과 “역시 박 회장이다. 속 시원하다”라는 말이 리플로 올라오며 포털사이트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박 회장의 말을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보는 시각에 따라 기업만능주의로 또는 경제를 위한 기업인의 읍소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 회장이 ‘쓴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는 우리 경제 현실과 아무리 쓴 소리를 해도 귀를 막고 있는 정치권의 모습이다. 120년 상공회의소 역사에서 처음으로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지방경제가 다 죽어간다’고 아우성을 쳐도, 70대 후반의 재계 대표가 아들뻘 밖에 안되는 정치권을 찾아가 고개를 숙여도 반응은 무덤덤하다.
재계는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집단소송제와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법 개정안, 비정규직 관련 법안 등 6개 법안에 발목이 잡혀있다. 이들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혹독한 외환위기(IMF)를 견뎌냈던 기업들도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미래 성장축을 찾기에도 힘이 부치는데 정치권이 잡고 있는 발목을 빼내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니 쓴 소리가 아니라 모여서 시위라도 해야 할 형편이다.
삼성전자ㆍ포스코 등 국내 대표기업의 지분 절반 이상을 외국인이 가지고 있고 국민은행ㆍ외환은행 등 대표 시중은행 지분 70% 이상을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가만히 앉아 경영권을 내주라는 소리와 다를 게 없다.
개혁의 목표는 경제발전이다.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라는 명제만을 가지고 기업이 어떻게 되든 상관 않는다면 일본의 10년 장기불황이 남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재벌의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 한다. 하지만 무너진 내수경기를 추스르는 게 먼저다. 박 회장의 쓴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면 박 회장이 칭찬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 지원이 기업을 살리고 내수경기 회복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다시 한번 정부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라는 박 회장의 칭찬을 듣고 싶다. 박 회장이 ‘미스터 쓴 소리’가 아니라 ‘미스터 칭찬’이 되는 날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