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사장은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희귀종 120종을 전문적으로 취급, 공급할 정도로 특수목 분야의 전문가다. 그가 개발해 국내에 공급한 대표적인 수종은 최고급 가구재인 과테말라 장미나무, 악기재인 미국의 연단풍나무, 문화재보수로 쓰이는 홍송, 인도산 흑단, 장난감으로 좋은 미주지역의 자작나무 등이다.대형 목재업체들이 나왕, 미송 등 평균 10여종의 원목을 취급하는 것과 비교할때 10배이상 많은 수종을 제재, 가공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31년을 맞는 영림은 IMF이전에 2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중견기업으로 대형 목재업체들이 휘청거리는 불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난해는 전년의 101억원을 넘어 132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IMF이전으로 점차 회복되고 있다. 현재 주로 다루는 50여종의 가공 원목은 인테리어, 가구, 악기재로 전국에 공급하고 있다. 한샘, 보루네오 리바트 등 유명악기 및 가구회사가 주고객이다.
李사장은 철저한 다품종 소량생산방식으로 틈새사장에서 기반을 탄탄히 다져왔다. 기존 목재업계의 소품종 대량 생산방식으론 승산이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특히 李사장이 다양한 수종을 취급할수 있었던 것은 국내 업계 최초로 연구개발(R&D)개념을 도입, 중남미, 아프리카 등 오지의 나무를 발굴해 기후와 습도 등이 다른 한국실정에 맞게 목재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李사장이 목재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78년. 대학 졸업후 동양정밀과 대우전자의 무역부에서 유럽 수출을 담당하던 중 제재소를 운영하던 선친 이용복(李龍福)씨의 갑작스런 와병(작고)으로 부친의 사업을 차장 직책으로 이어 받아 목공소로 재창업, 오늘의 영림목재를 키워왔다. 아직도 목재업 원로들은 그를 李차장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매우 정답게 들린다고 한다.
창업 당시 샘표식품의 간장용기용 목상자생산에 주력했고 이후 삼립식품의 제빵용기 및 삼성전자의 냉장고용 목재 쇼케이스 및 파렛트의 대량 납품을 하면서 부친 사업 인수후 5년만에 기반을 다져나갔다.
이후 플라스틱 및 제지등 대체품의 대량 등장으로 이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국내 업계에서 생소한 미국 서부지역과 캐나다 동부지역의 고급 활엽수 및 침엽수를 수입, 각종 수종을 용도에 맞게 제재, 가공하는 목재 개발사업으로 전환했다.
또한 89년에 「파렛트 렌탈 풀」업체이며 독보적인 물류산업을 이끌고 있는 서병륜 사장의 한국파렛트·풀㈜에 과감한 자본참여를 했고 50만달러의 자동기계를 구입해 단기간에 40억원에 달하는 물량을 공급하므로써 해당업체와 WIN-WIN제휴가 되는 사례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목재가격이 대 폭락했던 93년은 승승장구하던 영림목재도 큰 어려움이 닥쳤다. 자사 목재를 구입하기로 했던 업자들이 가격이 폭락하자 계약을 파기하는가 하면 이미 지급한 현금이나 어음을 돌려달라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당시 연안부두에 있는 자사 소유의 보세창고를 과감히 매각,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李사장은 기업관이 있는 신용있는 기업인과만 거래를 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거쳐 현재 KAIST 최고정보경영자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분사(分社)전략을 핵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고부가가치 원목사업에 승부를 걸고 일본, 유럽 등지에도 원목가공제품의 수출를 강화하고 있다.
인천=김인완 기자IY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