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과 고향부모

WTO-DDA, FTA 등 가끔 신문지상에 보이는 영어 알파벳이 국민들 눈에는 생소하기만 하다. 다만 이런 기사들이 날 때마다 농민들의 시위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 농업과 관련된 일이려니 여기며 무관심하게 각자의 일터로 향한다. `보릿고개`란 말은 기억조차 희미한 먼 옛날 일이고, 쌀 재고가 천만석을 넘어서 정부가 골치를 앓고 있을 정도로 흰 쌀밥 먹고 사는 시대이기에 농민시위가 있으면 잠시 고향생각만 날뿐, 곧 막히는 길에 짜증만 낸다. 우리 국민은 반만년 역사를 쌀을 주식으로 살아왔고 쌀 농사가 농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큰 만큼 쌀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더욱이 우리 나라의 식량자급률이 27%이고, 쌀을 제외할 경우 7%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된다. 중동석유가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이끌었듯이 식량파동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식량 수출국들은 한민족의 얼과 역사가 담긴 생명산업인 쌀과 농산물을 대상으로 자국의 농업과 농민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개방압력으로 우리의 농업을 고사직전까지 몰아가고 있다. 농업의 축소와 해체는 식량생산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상실된다는 의미이며, 농민의 생존공간이 해체된다는 것은 농촌의 파괴이기에 국가와 사회ㆍ경제에 예기치 못한 엄청난 재난이 될 수 있다. 또한 연구기관의 분석에 의하면 생명, 식량, 환경 등 사회공익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매년 50조원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양정방향은 시장기능에 의한 수급조절과 경쟁력제고, 그리고 농민과 농지를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지향하며 쌀을 단순히 경쟁력 없는 공산품쯤으로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정부는 WTO, FTA 등을 빌미로 생명의 근간인 농업에 구조조정이란 잣대를 들이대어서는 안된다. 농업이 갖는 다원적 기능과 공익성을 정확하게 알려 농업문제를 보는 국민의 시각을 바로잡아주어야 할 책무가 있다. 농업은 주름이 깊게 패인 고향부모의 얼굴이 아닐까. <문석호(민주당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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