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의 입시부정 사건으로 기록될 2005학년도 수능에서 인터넷은 `부정의 온상'과 `수사단서 제공의 장(場)'이라는 상반된 역할을 했다.
높은 점수를 원하지만 실력이 부족한 수험생과, 실력은 있지만 돈이 필요했던대리응시자들은 인터넷을 매개로 생면부지의 `남남'에서 양심을 저버린 `공범' 관계로 전락했다.
그러나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진행된 수능부정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급기야경찰 수사를 촉발한 것도 인터넷의 힘이었다. 수능부정과 관련, 인터넷이 `병주고약을 준' 셈이다.
올해 적발된 부정행위는 크게 휴대전화 메시지를 사용한 부정행위와 대리시험으로 나뉜다. 그러나 두 유형 모두에서 인터넷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달 광주에서 3년간 대리시험을 치른 혐의로 구속된 서울 모 여대 중퇴생 K(23)씨와 대리시험을 부탁한 삼수생 J(20)씨는 2002년 10월 중순 인터넷 채팅으로 가까워졌다.
수능을 코 앞에 뒀던 두 젊은이는 채팅을 하면서 대리시험을 공모했던 것.
또 1일 서울에서 자수한 모 의대생 기모씨가 의뢰자 한모(21)씨를 만난 것도 인터넷 게임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두 사람 사이에 서울과 울산이라는 물리적 거리는범행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두 해 연속 대리시험을 의뢰한 `가짜 서울대생' 차모(23)씨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서울대 중퇴생 박모(28)씨와 접촉했고, 1일 인천에서 자수한 여대생 2명도인터넷 수능 관련 사이트를 매개로 일을 꾸몄다.
청주 입시학원이 연루된 부정행위에도 인터넷은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다.
학원장 배모(29)씨는 삼수생 이모(20)씨에게 받은 메시지를 인터넷에 연결된 SMS 사이트를 이용해 재전송해 경찰 수사를 `잠시나마' 따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에 수능 부정행위에 대한 제보가 잇따르면서 인터넷에서 출발한부정행위의 실체도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찰은 인터넷에 떠도는 각종 부정행위 수법들에 착안해 수사 방향을 정했다.
대리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이 응시원서에 사진을 바꿔붙인다는 등 다양한 수법들이 인터넷에 올라왔고 경찰은 이를 토대로 `전체 응시원서 사진 정밀 대조'라는 수사기법을 동원했다.
인터넷이 낳은 부정행위에 대해 인터넷에 오른 글들에서 착안해 수사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방법이었다.
경찰도 대대적인 수능부정 수사에 착수한 가장 큰 배경으로 "수능부정과 관련,확인되지 않은 내용의 글들이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포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인터넷은 익명성, 기동성, 광역성이 보장돼 얼마든지 범행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면서 "과학기술의 발전 만큼이나 사용자들의 도덕성도 함께 따라가줘야 하는 데 그게 잘 안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