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개혁을 위한 정부의 히든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5대그룹 핵심업종에 대한 은행대출금의 출자전환은 부채비율축소와 핵심업종에 대한 역량집중이라는 재벌개혁의 미완의 과제를 단시일내에 한꺼번에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평가된다.
핵심업종의 우량기업에 대한 부채비율을 단기에 개선해주고 이 과정에서 부실계열사를 정리하게 되면 그동안 재벌의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던 과다한 부채비율과 선단식 경영행태를 함께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시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난관이 산적해 있다. 재벌들은 경영권을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출자전환에 따른 경영권상실을 우려하고, 일반 국민들은 재벌에게 특혜를 준다고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5대재벌의 대출금출자전환방안을 추진하게 된 배경과 구체적인 방안을 살펴본다.
◇재벌개혁을 촉진하기 위한 엄포용인가, 실제 집행하려는 방안인가=정부 고위당국자는 최근 『대출금 출자전환은 5대그룹의 개혁을 강요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다』고 언급했다.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할 경우 소유권과 경영권을 박탈하는게 불가피하므로 정부가 사용하기 힘든 수단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소유권과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벌들이 스스로 외자유치, 계열사매각 등을 통해 구조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주문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이 당국자는 22일 대출금 출자전환이 실제로 적용이 가능한 방안이고 재벌들도 불가피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출자전환을 하더라도 경영권이 유지되고 도리어 출자전환이 경영권유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수주주와 외국인투자자들의 경영간섭으로 과거와 같은 무소불위한 경영권독점은 불가능하고 어차피 경영권 일부를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만큼 은행의 지분확보는 이같은 상황에서 우호적인 지원이 가능한 원군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워크아웃과정에서 출자전환으로 소유권을 상실한 오너에게 상황에 따라 경영권을 부여하는 것을 예로 들며 경영권유지가 특혜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대출금 출자전환은 소유권과 경영권을 박탈하게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리해 출자전환이 경영권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은행대출금 출자전환에 대한 재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수순으로 실제로 재계에 대한 설득작업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량 핵심기업을 출자전환 대상으로 선정하는 이유는=구조조정의 가시적인 성과를 조기에 거두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업구조조정의 핵심은 5대그룹인데 가시적인 성과도 없고 재벌들의 태도도 변하지 않고 있다는게 국내외의 시각이다. 은행대출을 출자로 전환해 핵심 기업 3~4개의 부채비율을 100~200% 수준으로 개선하고 이에 병행해 부실자회사를 매각 등의 방법으로 정리할 경우 해당 재벌은 군살을 털어내면서 재무구조도 개선된 클린기업으로 탄생하게 된다.
또 핵심 우량기업에 대한 출자전환은 부실기업에 대한 출자전환과 달리 감자 등 대주주가 꺼리는 조치없이 대출금을 주식으로 바꾸는게 용이하다. 실사결과를 거쳐 자본잠식 상태에 있을 경우 감자조치를 선행한뒤 은행이 대출금을 출자로 전환하는데 감자대상기업의 경우 5대그룹이 출자전환을 거절할 것이 분명하다.
◇실현 가능성은 있는가=정부 고위당국자는 12월까지는 가시적인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나타날 외자유치 등 5대그룹의 자구노력을 함께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재벌들중 출자전환을 받아들일 곳이 나타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시중자금독식을 통해 국제통화기금(IMF)체제속에서도 유일한 안전지대로 남아왔지만 회사채발행규제 등 정부의 지속적인 재벌개혁정책의 효과가 가시화하고 재벌 스스로도 더이상 과거처럼 버티기 힘들다고 인식, 변화의 징후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5대그룹의 동상증상이 발가락에서 다리까지 확대됐다는 사실을 인식, 적극적인 구조개혁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 당국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재벌들의 의중을 타진, 경영권 보장을 전제로 한 대출금의 출자전환방안을 모색한 결과 재벌들도 이를 선택가능한 대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부 정부 당국자는 이 때문에 재벌의 반발보다도 이를 특혜로 인식해 출자전환이 불가능해질 것을 우려, 정확한 가치산정에 의한 출자전환은 특혜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는 상황이다.【최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