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에 완성이라는 것 없지만 혼을 쏟아 다가가려 계속 노력"

은관문화훈장 수상 피아니스트 백건우씨


"연주자로서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항상 고민합니다. 단지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 백건우를 피아노 건반에 담아 궁극적으로 나 자신이 악기가 되는 경지가 바로 혼을 담은 연주 아닐까요. "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64ㆍ사진) 씨가 2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연주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정부가 생존 연주자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백 씨는 "오랫동안 연주 생활을 해 오면서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이번 훈장 수상으로 고마우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앞서 6월에는 한불문화상위원회가 주관하는 제11회 한불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부인인 영화배우 윤정희 씨도 최근 16년 만에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이들 부부는 올해 유난히 상복이 많다. 백 씨는 오는 13일(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14일(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주빈 메타의 지휘로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갖는다. 피아노의 거장이 이번 무대에서 선택한 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과 말러 교향곡 제1번,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다. 특히 영화 '샤인'을 통해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마(魔)의 협주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이틀간 연주한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고국 러시아를 떠나 음악으로 미국을 정복하겠다는 꿈을 품고 선보인 야심작입니다. 저도 15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처음 참여한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이기도 하죠. 우연히 제가 연습하는 것을 들은 세계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주최측에 '저 젊은이가 연주를 계속할 수 있게 도우라'고 했으니 제게는 무척 인연이 깊은 곡이기도 합니다." 그는 지난해 6월 라흐마니노프의 고국인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환갑을 훌쩍 넘긴 거장에게 던져진 연주자로서 계획을 묻는 질문에 역시 '건반 위의 구도자'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음악도 피아노 연주도 끝이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감정적으로 곡을 해석하면서 곡에 숨어 있는 섬세한 면을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내 느낌을 앞세우기보다는 음악이 내게 어떤 언어로 말을 거는가에 귀를 기울입니다. 연주자로서 완성이라는 것은 없지만 진실된 마음으로 그곳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끊임 없이 계속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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