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 개각] "국정혼란 막자" 검증된 모피아 중용…관치 재연 우려도

■ 경제부처 개각 의미
尹재정 유임으로 관료출신 경제팀 구성
동반성장·M&A등 중대임무 처리 기대
"금융개혁 의지 물거품" 시장 우려 불식은 과제

이명박 대통령 4년차, 안정된 정책운용을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재정부 출신 관료들이 돌아왔다.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석동(왼쪽) 전 재경부 1차관이 지난 2008년 1월 미국발 금융쇼크 이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긴급금융정책협의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경제운용을 '관료'에게 맡겼다. 정치인ㆍ학자 출신이 물러난 경제부처 수장으로 관료, 그것도 옛 재정경제부 출신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집권 초 "이러니까 모피아(옛 재무부 출신 관료)라는 말이나 듣는 것 아니냐"며 관료, 그중에서도 모피아에 강한 반감을 보이던 이 대통령이 역설적으로 이들의 관리능력을 높이 사 집권 후반기 흔들릴지도 모르는 국정운영의 한 축을 담당하도록 한 셈이다. 공정사회론에 바탕을 둔 동반성장, 금융사 인수합병(M&A) 처리, 물가관리 등 집권 후반기답지 않은 중차대한 임무를 깔끔하게 완수하기에는 옛 재경부 출신만 한 인재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관치논란으로 물러났던 이들이 부활하고 관료만 중용되는 집권 후반기 특유의 분위기가 강화되면서 폐쇄적인 공직사회를 개혁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구하기는 불가능해졌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준비된 장관, 그들이 돌아왔다"=언젠가는 돌아올 것으로 알았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한꺼번에 복귀할 줄은 그들 스스로도 몰랐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와 김석동 금융위원장 내정자,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 모두 과천 관가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경제관료다. 특히 모피아 출신인 최 내정자와 김석동 내정자는 각각 '최틀러' '영원한 대책반장'이라는 별명이 보여주듯 모피아 중에서도 강한 업무추진력과 돌파력을 뽐낸다. 김동수 내정자 역시 재경부 시절 물가업무를 도맡으면서 EPB 출신으로는 드물게 실물감각을 자랑한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집권 4년차인 2011년이 사실상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마지막 해라는 점에서 이들 말고는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 전문성과 업무역량은 수십년간의 관료생활로 이미 검증됐고 3명 모두 재정부(재경부) 차관을 역임하며 장관 업무도 사실상 몸에 익혔다. 이명박 정부 개각의 가장 큰 장애물인 인사청문회 역시 적어도 차관까지 거치며 장관을 준비해온 이들에게는 무난히 넘을 만한 고개라는 게 지배적 평가다. 경제부처의 한 현직 고위관료는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공무원들이 몸을 움츠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 3명은 맡은 부처를 강하게 이끌고 갈 리더십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관료는 "2011년은 4년차치고는 자원외교, 금융사 M&A, 물가관리 등 굵직한 일이 많은데 인사권자의 의중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일 잘하는 사람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관치논란 재연되나=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유임된 가운데 경제부처 수장들이 모두 경제관료 출신들로 짜여지면서 앞으로 경제팀은 역대 유례가 없었던 '환상의 호흡'을 자랑할 것으로 보인다. 수십년간 한 건물, 한 사무실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아는 처지다. 정치인 장관들의 생색내기 행보나 학자 출신 관료들의 현실을 무시한 정책입안도 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최후의 시장개입 기술자'로까지 불리며 외환시장의 기능을 부정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최 내정자나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김석동 내정자 모두 재임 시절 관치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우려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경제위기를 거치며 기획형 관료보다 위기관리에 능한 '모피아'가 부상한 것까지는 용인됐지만 위기가 끝나고 시장의 선순환 기능을 강화해야 하는 시점에까지 강력한 관치론자들을 중용했다는 것은 시장에서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평가다. "위기 때 뜬 모피아가 끝내 정권 후반기에 생명연장의 꿈을 이어갔다"는 모 국책연구소 연구원의 일갈은 그래서 흘려 듣기 어렵다. 정권 초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던 관료사회의 개혁은 이제 끝났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 대통령 취임 초 금융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모두 민간 출신으로 채우며 보여준 관치금융 개혁 의지는 이제 그림자조차 찾기 힘들게 됐고 모피아의 엘리트 핵심 라인에 올라타기만 하면 무한한 생명력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과거의 전례 역시 부정하기 어렵게 됐다. 상반기 줄줄이 예정된 공공기관 인사에서도 이 같은 자기사람 및 전직관료 심기는 더욱 노골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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