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49ㆍ사진)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고전 명문 감상' 수업시간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여행을 하게 된다. 정 교수는 한자로 된 교과서를 들고 콧등까지 내려온 안경 너머로 학생을 바라보며 "현수가 한번 읽어 봐라" "주현아, 이건 무슨 뜻이지?"라고 물어보는 훈장님이 된다. 마치 조선시대의 서당을 보는 것 같다. "과거의 글을 통해 현재의 나를 깨닫고 좌표를 정하는 수업이 됐으면 좋겠다"는 정 교수의 바람처럼 학생들은 "이 수업으로 고전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전민선(국어국문학과 2)씨는 "보통 고전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수업을 통해 '아, 이 시대 사람들도 이렇게 진보적인 생각을 많이 했었구나' '지금 시대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을 했었구나'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며 "다양한 일화를 위주로 내용을 전달하는 교수님의 수업 방식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키워드가 있는 수업=정 교수의 고전 명문 감상 수업은 매 학기 특정한 '키워드'를 정한다. 이번 학기 키워드는 '나(我)'. 정 교수는 "고민 많은 학생들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며 "옛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했고 나와 얼마나 비슷한가, 그 고민을 어떻게 해결했는가를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웠으면 했다"고 말했다. 이런 정 교수의 바람은 수업은 물론 과제물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6일 있었던 수업에서 정 교수는 다음 수업의 내용인 '인지동천기(유만주라는 사람이 자신이 살고 싶은 공간을 기록한 글)'를 읽어보라고 주문하면서 '자신의 인지동천에 대해 적어오라'는 과제를 내주었다. '고전을 고전대로 가르치려다 보면 그야말로 고전을 면하지 못한다'는 정 교수는 "지금 나는 고전 강의를 하고 있지만 고전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고전을 통해 현재, 그리고 나를 보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 최종 목적"이라고 웃어 보였다. ◇엄격하지만 부드러운 '두 얼굴'=수업 중 정 교수는 수시로 학생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한 명을 지목해 문장을 읽어보라거나 해석을 하라고 주문한다. 학생들이 문장을 읽거나 해석을 하면 "그렇게밖에 해석이 안 되니?" "그렇게 읽으면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가 아니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가 되는 거잖아" 같은 다그침이 이어지기도 한다. 정 교수는 4번 결석하면 다음 수업부터는 출석조차 부르지 않는 엄격한 선생님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 뒤에 있는 자상함이 정 교수의 매력 포인트다. 매섭게 학생을 다그치다가도 '목이 잠겨서 발표가 힘들다'는 학생을 향해 잠긴 목소리를 흉내 내며 "그럼 넌 다음에 해라"라고 해 웃음을 주고 교재에서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문장이 나오면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학생들이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과제물에 늘 다정한 코멘트를 달아주기도 한다. 정 교수는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과제를 수행한 학생들은 교수가 자신의 과제를 꼼꼼히 읽었다는 데서 의미를 찾는 것 같다"며 "과제를 꼼꼼히 읽다 보면 학생들이 파악되고 코멘트를 하다 보면 학생의 얼굴과 이름을 자연스레 외우게 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수업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사실 요즘의 대학 환경에서 고전 특히 한문 고전을 강의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인문학에 대한 무관심도 있지만 학생들 스스로 한자에 공포를 많이 느끼고 있다. 정 교수는 이 문제를 '교감(交感)'으로 정면 돌파했다. 정 교수는 "아이들을 무조건 엄하게 찍어 누른다고 듣는 것도 아니고 결국 교감이 되지 않으면 강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 혹은 '수업을 통해 성장한다'는 경험을 주지 않으면 한 학기 강의를 들은 뒤 다음 학기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며 "고전에는 콘텐츠만으로도 독자를 압도하는 파워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암 박지원이 자신의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쓴 제문을 수업 시간에 읽은 적이 있는데 이때 그 내용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린 학생들이 있을 정도였다. 여러 고전 중 특히 연암의 글은 3편만 읽으면 학생들이 그 사고의 위대함에 '우와' '굉장하다'는 감탄과 함께 'KO'된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늘 깨어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정 교수는 지식(knowledge)이 아닌 지혜(wisdom)를 주는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을 누차 강조했다. '미쳐야 미친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등 꾸준한 저술활동을 하는 것도 이 같은 고전, 더 나아가 인문학의 힘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는 "국문과에 온 학생들 중 몇 명은 2, 3학년이 되면 상경대로 전과하고 국문과에 다니면서 고시공부 등 다른 일을 한다"며 "나는 국문학을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하는 공부가 상당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마음에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에게 끊임없는 자극을 주는, 학생들에게 늘 깨어있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1961년생. 1983년 한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5년과 1990년 한양대 대학원(문학 석ㆍ박사)을 거쳐 1995년부터 한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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