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문화대상] Rhizome

낙후 인쇄단지에 새 패러다임 제시

계획부문 대상을 수상한 ‘Rhizome(리좀이론을 적용한 동광동 인쇄문화단지 계획)’은 리좀이론이라는 현대철학 개념을 건축 설계에 접목시켜, 쇠퇴해가는 부산 동광동 인쇄골목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올해 한국건축문화대상 계획부문 대상을 수상한 ‘Rhizome(리좀이론을 적용한 동광동 인쇄문화단지 계획)’은 현대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한 리좀이론을 건축계획에 접목시킨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무 뿌리’를 의미하는 리좀은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나와 굵은 줄기를 중심으로 작은 가지들이 뻗어나와 있는 ‘수목형’(tree) 구조와 대조를 이룬다. 원래는 식물학적 용어로 스스로 뿌리이자 줄기를 이루는 식물을 가리키는데,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 용어를 통해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없는 등가의 선들이 자유롭게 교차하며 무한 증식이 가능한 구조를 리좀이라 정의했다. ‘리좀이론으로 새롭게 태어난 ‘동광동 인쇄문화단지 계획’은 각 객체가 다원성을 유지하면서도 계속적으로 이합집산하고 또 네트워크화 되어 경계를 넘나드는 장르 해체방식으로 점철되는 구조이다. 흔히들 얘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탈중심화(decentralization),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 개별화(individualization)의 과정을 거치는 미래 지향적인 건축 양식이다. 부산 중구 동광동 인쇄단지 8,445㎡(2550여평)에 지상 4층짜리 도소매 시설과 공공시설 ,오피스시설로 구성된 계획안은 생산은 물론 문화와 휴식이 가능한 복합공간이다. 1960년대 초부터 인쇄소가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인쇄골목은 현재 인쇄ㆍ출판ㆍ기획ㆍ재단ㆍ지업사 등 관련업종 200여 개소가 한곳에 모여 부산 전체 인쇄물량의 약50%를 처리하는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도심 축의 이동과 인쇄산업의 쇠퇴로 영세성을 면치 못해 고립된 지역. 설계자는 더 이상 인쇄 단지 내 관련 산업들의 군집만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한계에 주목했다. 동광동 인쇄단지는 설계자의 손을 거쳐 기획ㆍ디자인, 생산ㆍ가공, 물류ㆍ창고 등 인쇄단지의 본래 기능에 방송ㆍ출판ㆍ광고ㆍ영화 등 연관 산업들을 결합시켜 복합 단지로 거듭났다. 또 복합단지와 지역 사회의 교감과 소통을 위해 지역 주민들을 위한 녹지 및 광장을 조성해 퇴보하는 인쇄단지에 새로움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특히 인쇄 단지와 인접해 있는 ‘40계단’의 역사적 의미를 거세하고 기능적인 측면만을 설계에 결부시킨 점이 두드러진다. 40계단은 6ㆍ25 전쟁 당시 피나민들이 오고 가며, 헤어진 가족을 만나거나 난전을 펼치거나, 구호물자를 받던 장소. 즉,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광장으로서의 기능만을 동광인쇄단지 계획에 접목시켰다. 설계자는 일명 ‘접붙이기(grafting)’ 방식으로 40계단을 인쇄단지의 지붕 높이로 연결시켜 하나의 통일된 흐름을 가진 연속된 공간으로 연출했다. [인터뷰] 계획부문대상 수상자 부경대 건축학부 5학년 이수영 “입선까지는 욕심을 냈지만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이수영(부경대 건축학부 5학년ㆍ사진)씨는 ‘리좀이론을 적용한 동광동 인쇄문화단지 계획안’으로 올해 건축문화대상 계획부문 대상을 받은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지난해 건축문화대상 공모전에 처음 참가해 고배를 마신 수영 씨는 올해에 대상까지 거머쥐며 촉망 받는 예비 건축설계사로 주목 받게 됐다. 이 씨는 “여느 공모전과는 다르게 철학을 설계의 기본 바탕으로 접목시켜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자신이 없었다”며 “3차 프리젠테이션 과정에서 설계 의도에 대해 심사위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올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심사규정이 까다로워져 참가자들이 진땀을 뺐던 해이기도 하다. 이수영씨 역시 2차 심사를 위해 계획안의 모형을 제출하던 날이 이번 심사과정에서 가장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 이 씨는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힘들게 들고 갔던 모형이 규정 사이즈를 2cm 초과해 현장에서 부랴부랴 뜯어고쳐야 했다”며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손에서 땀이 난다”고 말했다. 이 씨는 평소에도 부산 중구의 남포동이나 동광동 등 낙후된 구 시가지들을 눈 여겨 본다고 한다. 건축학도들에게는 신도시보다 구시가지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씨는 올해 계획부문 주제를 접하는 순간 새로운 도시 발전 모델로 평소 관심이 많던 리좀이론과 동광동 인쇄단지가 머리 속에서 동시에 오버랩 됐다고 한다. 이 씨는 “건축 설계는 단순히 새로움을 창조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인 발전이 가능하도록 고민해야 한다”며 “아직은 미숙한 점이 많은 계획안이지만 사향길에 접어든 동광동 인쇄 단지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는 방향 제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올해 졸업반인 이 씨의 장래 희망은 건축설계사사무소에 취직해 도시를 캔버스 삼아 상상속의 건축 공간들을 현실 세계로 옮겨오는 것. 기회가 된다면 건축 철학도 함께 공부하고 싶다는 게 이 씨의 바람이다. 이 씨는 “건축 설계를 공부하면 할수록 다양한 철학정신에서 해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건축철학을 연구해 공간을 채우고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설계자의 혼(魂)이 창의적으로 연결되는 건축을 설계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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