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내년도 경제전망은 ‘잿빛’이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지금껏 나온 국책ㆍ민간연구소의 전망을 통틀어 유일하게 4%대로 주저앉았고 올 추정치보다 낮다. 올 내내 지속됐던 경기상승 국면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물론이다. 대내외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여기에 물가마저 흔들리고 있어 고유가, 서브프라임 부실 충격파에 휩싸인 한국 경제가 서서히 가라앉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도 제기된다. ◇경기상승 국면 하락세로 돌아섰다=한은의 2008년 경제성장률 전망치(4.7%)는 비관적이다. 시장에선 5%를 넘는 기관들의 전망에 힘입어 ‘그래도 4%대 후반, 최대 5%는 지지해줄 것’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했지만 기대치에 훨씬 못 미쳤다. 올 추정치(4.8%)보다 나쁘다. 올 1ㆍ4분기부터 이어온 경기상승 국면도 꺾이고 하락추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실제 올 1ㆍ4분기 4.0%, 2ㆍ4분기 5.0%, 3ㆍ4분기 5.2%로 상승세를 유지하던 경제성장은 4ㆍ4분기 5.1%(추정)로 둔화됐다. 내년에는 상반기에 4.9%로 더 떨어진 뒤 하반기에 4.4%로 추락하는 등 상황은 갈수록 나빠질 전망이다. 소비ㆍ투자ㆍ수출 모두 올해보다 뒷걸음질친다. 소비의 경우 수출이 세계경제 침체로 증가세가 둔화(11.3%→10.3%)돼 대다수 기관들은 소비가 버팀목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한은은 소비도 교역조건 악화, 부의 효과 축소 및 가계채무 부담 지속 등으로 올해(4.4%)보다 둔화(4.3%)될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성장 양 축이 무너질 위험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설비투자 역시 국내외 여건 불확실성 증대로 증가세가 7.6%→6.4%로 둔화될 전망이고 건설투자는 1.8%→2.8%로 소폭 개선되나 주택투자 부진이 이어지는 등 전반적으로 건설경기는 좋지 않을 것으로 한은은 내다봤다. 한국 경제가 어디 하나 기댈 언덕이 없는 것이다. ◇대외발 충격파에 속수무책=한은이 암울하게 내년도 경제성장을 내다본 데는 대외발 악재 충격파가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한은은 “유가 상승세 지속과 서브프라임 부실 영향 확산 등 하방 리스크 요인이 예상 외로 악화될 경우 국내 경기의 상승 모멘텀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즉 서브프라임 부실 파문이 세계 경제둔화로 이어져 우리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고유가가 경상수지 악화는 물론 물가급등, 소비둔화로까지 파급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한은은 내년도 세계 경제성장률이 올해 5.1%에서 내년 4.6%로 둔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브프라임 부실 파문의 진원지인 미국의 내년 성장률이 올해 2.1%에서 1.8%로 하강하고 유로권 역시 올해 2.6%에서 내년 2.2%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성장도 11.3%에서 10.5%로 소폭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교역신장률 또한 올해 7.9%에서 내년에 7.3%로 둔화돼 한국의 수출 증가세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원유 도입단가가 올해 배럴당 69달러에서 내년에는 81달러로 급등, 소비지출을 제약하고 물가상승 압력을 가중시키는 동시에 경상수지를 악화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한은의 전망이다. ◇저성장 체제 고착화되나=내년도 경제성장률 4.7%는 올해에 이어 2년 연속 4%대 성장이어서 저성장세가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2002년 신용카드 남발에 의한 인위적 경기부양으로 성장률이 7.0%를 기록한 후 2003년에는 3.1%로 곤두박질쳤다. 2004년 4.7%로 나아진 후 2005년에는 4.2%로 둔화됐으며 2006년에 5.0%로 반짝 상승했다. 하지만 2007년 성장률은 4%대로 다시 떨어졌고 2008년에는 이보다 더 둔화될 전망이다. 최근 5년 사이 성장률이 한 해가 좋으면 그 다음해는 낮아지고 다시 그 다음해에 반등하는 기조를 보였으나 올해와 내년에는 연속 하락하는 셈이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4.5~5%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4.7%의 성장률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소득 2만달러 돌파가 예상되는 한국 경제가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기도 전에 5% 미만의 성장률이 굳어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여기에 소비자물가 상승률 또한 올해 2.5%에 이어 내년에는 3.3%로 급등할 것으로 전망돼 저성장 속에 고물가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도 크다. 특히 내년 상반기에는 유가급등의 파급효과와 등록금을 비롯한 개인서비스 요금이 대거 인상되면서 3.5%의 오름세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