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 100일] 시험대 선 새정부 리더십

지난달 25일 식당을 해서 번 돈으로 집안이 가난한 학생들에게 10년동안 9,000만원이나 되는 장학금을 지원해 준 김영희 할머니가 이승을 등져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 적이 있다. 김 할머니가 경영하던 개성집의 간판메뉴는 `조랭이떡국`이다. 이 조랭이떡국은 담백하고 시원한 맛으로 주변의 고려대학교 학생들과 교수 등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조랭이떡국은 일반 떡국과 맛은 비슷하지만 모양새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 특징이다. 떡이 넓적하지 않고 둥그런 작은 구슬 두개를 붙여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김 할머니는 생전에 `떡국모양이 이상하다`는 손님들의 물음에 `옛날에 개성(고려의 수도)에 사는 사람들이 이성계가 위화도회군한 데 대한 분풀이로 (이성계의)목을 비튼다는 의미로 떡국을 이렇게 해서 먹은데서 유래됐지`라며 상세하게 설명해 주곤했다. 조랭이떡국은 민심의 `한풀이`에서 유래됐다는 게 김 할머니의 설명이었다. 참여정부 100일에 굳이 조랭이떡국 얘기를 꺼낸 것은 새 정부를 바라보는 민심이 편치 않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랭이떡국은 나라가 바뀐 데 대한 백성들의 한이 녹아 있는 음식이어서 참여정부에 빗대기가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사회갈등의 분출과 혼란`으로 요약되는 참여정부 초기 100일은 현대판 조랭이떡국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는 견해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불안한 리더십 = 사실 참여정부 100일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평가는 기대반 우려반이다. 기대는 이전 정권들보다 훨씬 높았지만 실망감만 많이 안겨준 게 아니냐는 평가가 많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기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과 시스템을 통한 개혁을 강조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제시한 이 비전은 100일도 안돼 퇴색하고 아마추어리즘으로 인해 갈등과 불안만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다. 국정운영이 총체적인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는 위기감도 팽배하다. 대통령의 광주 5.18기념행사가 한총련등의 물리적 저지에 의해 차질을 빚고 그 사이 공권력은 바닥으로 추락했고 화물연대의 운송거부가 가져온 물류대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를 둘러싼 정부와 교총, 전교조간 갈등은 지켜보는 국민들을 짜증나게 했다. 집단이기주의가 한꺼번에 터져나오며 두산중공업, 철도, 화물연대에 이어 화물차, 레미콘, 택시 지하철 노조도 경유나 LPG값 인하를 주장하며 실력행사를 잔뜩 벼르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나 조흥은행 매각, 비정규직 처우 개선, 고용허가제, 새만금사업 계속 여부등을 놓고도 여론이 균열조짐이다. 청와대는 새 정부 출범후 끊임없이 이어지는 혼란상을 `과거로부터 젖을 떼는 이유기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청와대가 시스템적 운영을 강조하면서도 국가를 경영할만한 강력한 리더십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구체적으로는 노 대통령이 나서지 않아야 할 곳에 너무 많이 나서 리더십의 기반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종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은 "이런 현상은 과거 권위적 리더십에서 민주적 리더십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노출된 문제점"이라며 "새로운 문화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세련된 형태로 발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는 F학점 = 그러나 새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불안하다. 특히 기업하는 사람들의 위기감이 더해가고 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정책 때문이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새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은 시장과 시대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정책의 불확실성이 제거돼 예측가능한 정책이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정부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목표로 지속적인 시장개혁을 표방하고 있으나 최근 SK글로벌 부실문제등과 관련해 구조조정의 원칙이 상실되지나 않을 지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임영재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김주영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장기적인 구조개혁프로그램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최근의 카드채처리등을 볼 때는 과거의 구습이 남아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사회갈등 심화 = 국민통합을 강조한 새 정부가 사회갈등을 봉합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핀잔도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장원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참여정부 100일은 사회갈등의 급격한 표출과 노ㆍ정 갈등이 증폭된 기간이었다"며 새 정부의 사회갈등 관리시스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두산중공업, 철도, 화물연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새만금 관련사안등을 지난 100일동안 갈등이 집중된 사례로 제시하고 "대부분 정부를 직접 상대로 한 갈등 표출이었으며 이로 인해 정부의 대응능력이 전면적으로 시험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급하면 체한다 = 참여정부 100일이 주는 교훈은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다. 한껏 부풀려 놓은 지지층들의 기대를 한꺼번에 채워준답시고 한계 능력을 뛰어넘는 일들을 무리하게 추진하다보면 부실공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노무현 정권의 임기가 5년임을 고려하면 지금은 기초공사단계다. 차근차근 바닥을 다져가야 할 때라는 얘기다. 이 교훈은 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와있는 호시우행(虎視牛行.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기)과도 맞닿아 있다. 지지층들을 의식한 기대충족보다는 법과 원칙이 중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민심과 역사의 평가는 `조랭이떡꾹`처럼 아주 냉정하다. <박동석기자 everest@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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