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 경남지부 과장 구모(46)씨는 지난 2005년 무면허 공사업자에게 1억원가량의 폐기물 처리 공사 여섯 건을 임의로 발주했다. 업자는 그 대가로 구씨 등 공사직원 세 명에게 태국관광을 시켜줬다. 2박3일간 고급호텔에 머물면서 낮에는 골프를 치고 밤에는 성매매를 즐기는 속칭 ‘황제여행’이었다. 구씨는 평소에도 업자들에게서 골프와 술 접대를 수시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검검찰청은 24일 3개월간 진행된 40여개 공기업의 각종 비리의혹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 21개 공기업 임직원 37명을 구속기소하고 67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또 국가보조금 비리 수사 결과 440여억원의 보조금이 부당지급된 사실을 적발해 49명을 구속기소하고 134명을 불구속기소했다. ◇‘황제여행에서 도박까지’ 비리 백태=검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실태와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도로공사 임직원의 비리는 황제여행에 그치지 않았다. 도로공사 인천 부지사장인 배모(46)씨는 한 업자에게서 공사가 관리하는 국유지를 매각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3,500만원을 받았다. 도로공사는 현재 기획예산처 주관으로 실시된 고객 만족도 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해 직원에게 고객을 가장해 허위 응답하게 함으로써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 1위를 차지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회사 돈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근로복지공단 하모(35)씨는 공단의 산재보상 구상금 3,000만원과 경매배당금 14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계좌 추적 결과 하씨는 이 돈으로 주식에 투자해 6억원을 날리는가 하면 주말에는 경마·경륜·로또 등 도박과 유흥비로 15억원을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국기계연구원 유모(44)씨 등 여섯 명은 허위물품 구매 요청서를 제출해 6년간 연구비 명목으로 22억원을 빼돌려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이 밖에 한국관공공사의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 레저 간부 윤모씨 등 두 명은 하청업체 선전 대가 등으로 1억원을 받아 챙겼으며, 한국증권거래소 산하의 코스콤 전 노조위원장 김모씨는 전산장비 남품업체에게서 2억여원의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번 수사에서 거액의 예산을 집행하는 공기업 임직원에 대한 내부 감시·감독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국가보조금은 눈먼 돈, 440억 부당지급=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국가보조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사례도 대거 적발됐다. 전주지검 등은 유가 상승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화물차 운전자를 지원하기 위한 유가 보조금을 가로챈 업자 세 명을 구속하고 44명을 불구속기소했다. 또 고유가를 타개하기 위해 지원된 대체에너지 개발 관련 정부 출연금과 중소기업 및 첨단분야 기업의 기술개발 지원을 위한 정부 출연금 수십억원을 횡령한 기업 대표들도 다수 적발됐다. 검찰은 부당지금된 국가보조금 440여억원을 관련 정부부처에 통보해 회수하도록 할 방침이다. ◇수사성과 기대 못 미쳐=그러나 이번 검찰의 수사 결과는 “공기업의 구조적 비리를 파헤치겠다”는 당초 목표에 못 미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적발된 공기업 임직원들이 대부분 중간 실무자급에 불과하고 고위 경영진에 대한 상납 등 조직적 비리를 적발하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실제 검찰은 산업은행의 그랜드 백화점 특혜 대출의혹과, 대한석탄공사의 특혜 자금 지원 의혹을 확인했지만 이 과정에서 고위 임원이나 정치권 인사가 개입한 정황은 밝혀내지 못했다. 증권선물거래소 임직원들의 과다 골프 접대비 등을 수사할 예정이었던 서울중앙지검 금조 1부의 경우에도 자회사인 코스콤의 일부 비리만 확인하는 등 곁가지 수사에 그쳤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공직자가 돈을 빼돌린 것 자체가 구조적 비리”라며 “수사가 마무리되는 8월 말께는 좀 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