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전당포` 활개

300만원이 넘는 신용카드 연체 때문에 고민하던 새내기 직장인 최모(26)씨는 우연히 들른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런 문구를 봤다. `아이템 담보로 현금 멋지게 대출해 드림` 게임 아이템 거래를 중개해 주는 한 사이트에서 최근 새로 시작한 `아이템 담보 대출` 서비스였다. 대학시절부터 온라인게임 `리니지` 캐릭터를 갈고 닦아온 최씨는 이 `사이버 전당포`에 자신의 밑천을 저당잡히기로 결심했다. 결국 `싸울아비8` 등 고가의 검(劍) 아이템을 맡기고 며칠 간 감정평가를 거친 끝에 260여만원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온라인게임 활황세를 타고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아이템 거래 중개사이트가 이제는 `대부업`으로까지 진출했다. 여전히 사회적 논란거리로 남아있는 아이템 현금거래이지만 논란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현실은 더욱 복잡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명 `대포폰` `대포카드` 등을 이용한 아이템ㆍ사이버머니 거래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아이템 거래 시장이 올해 3,000억원대로 추정될 만큼 덩치가 커졌기 때문.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가 3,600억원대로 추정되는 것과 비교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될 형국이다. 지난해 초 경매사이트 `e베이`에서 거래된 온라인게임 `에버퀘스트`의 아이템 규모를 조사한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 따르면 에버퀘스트 유저들은 아이템 거래로 시간당 3.42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에버퀘스트국(國)의 1인당 국민소득(GNP)이 2,266달러로, 러시아보다는 적고 불가리아보다는 많은 세계 77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e베이에서 자유롭게 아이템 거래가 이뤄지는 미국과는 달리 국내 게임 서비스사와 아이템 중개업체, 게이머들 간 줄다리기는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게임업체는 아이템의 저작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며 “거래 근절”을 외치고, 중개업체와 게이머들은 “정당한 노력의 소산”이라며 자유로운 거래를 주장한다. 아이템 거래가 건전한 게임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입장과 현실을 인정하고 양지로 끌어내야 한다는 입장도 서로 엇갈리고 있다. 법적 해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아이템 거래 사이트 25개를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했지만, 지난해 10월 법원은 게임업체가 이들의 거래 중개행위를 막을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이템 거래 자체로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아직은 게임문화가 성숙되지 않아 시기상조”라며 “부작용에 놀란 사회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다”고 말했다. <김문섭기자 cloone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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