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대기업 투자 적극 나서라"

대통령등 잇단 주문에도 요지부동… "경기회복 이후 대비해야"


“대기업들이 위기 이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현금 확보보다는 투자를 많이 하기 바랍니다.” (이명박 대통령, 1월5일 대한상공회의소 신년인사회) “재계도 고통분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야 합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3월11일 위기관리대책회의) “우리 경제가 회복되고 있어 기업들이 속도를 내 투자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한승수 국무총리, 5월14일 언론사 편집ㆍ보도국장 간담회) 대통령은 물론 정부부처 수장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대기업들에 투자를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요지부동이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30대 대기업의 현금성 자산 규모(3월 말 기준)는 39조9,910억으로 지난해 말(37조892억원)에 비해 3조원(7.82%) 가까이 늘어났다. 지속적으로 회사채 등을 발행해 현금을 확보한 뒤 유보금으로만 쌓아놓고 있는 것이다. 불확실한 경기전망 속에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한국개발연구원 거시금융경제연구부의 이한규 박사는 “대외환경 변화 없이는 투자심리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투자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도 적지않다. 수요가 없어 설비를 늘리기 힘들다면 신제품이나 기술개발(R&D) 투자를 늘려 경기회복 이후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600대 기업의 투자규모는 전년 대비 2.5% 줄어든 86조7,000억여원에 달하지만 이 약속조차 지켜지기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상로 산업은행 경제연구소장은 “세계산업의 조류 변화에 우리 기업들도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설비투자보다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신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글로벌 기업들 중에는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사례가 적지않다. 유럽 최대 석유업체 로열더치셸은 올해 310억달러 이상을 투자해 에틸렌ㆍLNGㆍ액화가스설비 등을 대폭 확충할 계획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5,000명을 감원한 상황에서 R&D 인력은 오히려 3,000명 늘렸고 투자규모도 지난해보다 10억달러 증가했다. 일본 샤프는 이탈리아에 세계 최대 태양광 패널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 적절한 유인책을 제시해야 꽁꽁 묶인 돈이 풀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1,000여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9년 설비투자계획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투자 활성화를 위한 과제로 금융지원 확대(39.0%)를 최우선으로 꼽았으며 금융시장 안정(16.8%), 세제지원 확대(14.0%), 재정지출 확대(10.6%) 등도 제시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미래 수요를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산업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두룡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경기회복 이후에는 고유가가 또 문제될 것”이라며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기술개발 등에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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