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구매 전용카드제(이하 유류카드제)가 표류하고 있다. 유류카드제는 석유유통질서를 바로 잡아 세수를 늘리겠다는 취지로 정부가 추진해 온 프로젝트. 그러나 별다른 당근이나 채찍을 제시하지 못한 당국의 어정쩡한 태도에다 업계마저 관심을 보이지 않아 유류카드제가 미아로 떠돌고 있다. 유류카드제는 석유제품 생산업체인 정유사와 도ㆍ소매 업체 사이의 거래자금을 인터넷 뱅킹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두 달간의 시범기간을 거쳐 지난해 9월20일 본격 시행에 들어간 유류카드제는 지난 20일로 6개월이 됐다.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국내 석유유통의 흐름을 파악하고 관리해 연간 47조원에 달하는 유류거래의 투명화를 유도하고자 했다. 특히 전체 석유제품 거래의 20%를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 무자료ㆍ면세유 거래를 정상적 거래시장으로 끌어들여 세원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있으나 마나 한 유류카드제 =유류카드제의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를 대신해 유류카드사업을 추진 중인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유류구매카드 가입업소는 정유사와 수입사, 석유대리점, 자영 주유소, 석유일반판매소 등 총 1만4,700여개 대상업체 중 18.3%에 불과한 3,019개에 그쳤다. 유류카드제와 비슷하게 사업자의 자율적인 참여방식을 채택한 ‘주류구매 전용카드제’가 사업시작 초기 6개월간의 참여율이 81%에 달했고 지금은 100%에 가까운 점과 비교하면 무색하기 이를 데 없는 기록이다. 유류카드를 이용한 실제 거래실적은 더욱 참담하다. 제도참여 업체 중 실제로 유류구매카드를 이용해 결제한 업체는 지난해 7월 시범실시 사업 기간을 포함해도 모두 20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류구매카드 결제금액도 128억원에 불과했다. 지난 3월 유류카드 결제금액50억원은 이 달의 전체 석유거래 금액 2조1,333억원의 0.2%에 그친다. 유류카드제에 가입한 한 주유소 대표는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가입했지만 쓰지는 않는다” 며 “유류카드제가 어떤 제도인지는 고사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석유사업자도 많다”고 고백했다. ◇채찍도 당근도 의지도 없다 =유류카드제와 달리 주류카드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배경에는 국세청의 ‘칼’이 있었다. 주류카드도 참여는 업계 자율에 맡겨졌지만 세무조사 권한을 가진 국세청이 눈을 부릅뜨고 있어 대부분의 주류업체들이 참여한 것이다. 주류카드 못 지 않게 잘 나가리라던 정부의 당초 예상과 달리 유류카드제가 활성화될 기미 조차 없는 것은 당국이 강제성은 고사하고 정책실천의 리더쉽 마저 보이지 못한 데 주 원인이 있다. 일각에서는 유류구매카드사용을 강제화 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으나 석유산업이 자유화된 상황에서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산자부측도 “마땅히 유류카드제를 달리게 할 채찍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제도를 밀어붙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석유협회 등도 무리한 시행은 오히려 더 큰 부작용만 만들 것이라며 경계한다. 그러나 유인책을 찾고 가용수단을 발굴, 유류카드제 정착을 이뤄내겠다는 산자부의 의지표명은 말 그대로 ‘립서비스’에 머물고 있다. 산자부는 지난해 말부터 관련업계와 유류카드제 활성화 회의 등을 개최하며 재정경제부등과 협의, 추가적인 세제지원을 추진하고 적극 참여하는 업체에 세무조사 일정기간 면제, 품질검사 완화, 모범업소 지정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현실화 된 것은 없다. 에너지경제원의 한 연구원은 “정부가 유류카드제에 강제성을 부여하기는 어렵지만 효용 대비 비용을 명확히 파악해 강력한 인센티브제도를 마련하고 홍보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시에 산자부가 분명한 정책추진 의지를 업계에 심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