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서울선언] 빈손으로 떠난 美… 발걸음 가벼운 中·獨… 구경꾼 된 日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는 역대 어느 다자 간 회의에서 찾을 수 없는 첨예한 국가 간의 이해득실이 걸려 있었다. 당장의 경기회복은 물론 미래 경제 질서까지 좌우할 수 있는 매머드 의제들이 이해득실에 따라 국가별로 충돌했다. 그렇다면 이번 회의는 어느 국가에 득(得)을 줬고 어느 국가에 실(失)을 주었을까. 결과적으로 볼 때 G20 정상회의를 상대적으로 성공리에 마친 곳은 중국과 독일인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미국은 사실상 그들이 원했던 해답을 거의 얻지 못했고 일본 역시 중국에 G2의 자리를 물려줘야 하는 거대한 경제질서의 흐름을 이번 회의를 통해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사실상 빈손으로 떠난 오바마=11월 중간선거 패배로 궁지에 몰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서울공항에 들어오면서 기대에 부풀었다. 도착 직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결실을 그의 손에 쥘 수 있을 것으로 보았고 미국의 무역 역조를 개선하고 중국에 대한 확실한 통화 절상의 도장을 이번 기회에 찍을 것으로 믿었다. 지난달 경주 재무장관회의 당시의 분위기로만 놓고 보면 오바마의 이런 기대가 그리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G20 회의를 마친 뒤 12일 서울을 떠나는 그는 사실상 ‘빈손’이었다. 선거 패배 이후 처음으로 해외 정상들과의 접전을 펼쳤지만 FTA도, 위안화 절상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도 모두 얻지 못했다. FTA는 그나마 조기 합의라는 상징적 단어라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주 회의때 제시했던 경상수지 목표제 도입은 중국과 독일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무산됐고 초안에 있던 중국의 통화정책을 가리키는 ‘경쟁적 저평가(competitive undervaluation)’라는 표현도 채택되지 못했다. ‘경쟁적 평가 절하 자제’를 ‘저평가 자제’로 바꿔 조금이라도 중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을 얻으려 했지만 도리어 중국과 신흥국들로부터 양적완화 조치에 대한 비난의 화살만 받았다. 때문일까.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 자리에 선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에서 미소는 거의 찾을 수 없었고 오바마 특유의 역동적인 모습 역시 정상회의 내내 자취를 감추었다. ◇발걸음 가벼워진 후진타오, 위안화 사실상 방어 성공=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 요코하마로 떠났다.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에 문제를 제기, 오바마 대통령의 요구에 물러서지 않으며 미국에 대립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중국임을 과시했다. 경주 재무장관회의 당시만 해도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날 것처럼 보였던 G20은 오히려 중국을 중심으로 신흥국들이 똘똘 뭉치며 미국에 쓴맛을 안겨줬다. 후 주석은 서울 정상회의에서 미국과의 환율담판은 물론 신흥국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위안화 절상을 압박해오는 미국에 맞서 신흥국의 자본 규제를 골자로 한 거시건전성 강화 등에 대한 인정을 얻어냈다. 여기다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에 반발하며 독일 등 유럽 선진국, 브라질 등 신흥국과 각각 전략적 동반관계를 보이며 국제 외교무대 중국의 위치를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후 주석은 특히 지난 11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이 집중적인 위안화 절상 압박을 한 데 대해 절상 프로세스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예봉을 꺾었다. ◇메르켈 총리, “성공적 회담” 희색=독일은 이번 회의 내내 중국 이상으로 미국의 정책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그리고 끝내 서울선언에 그들의 입장을 담아내면서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었다. 특히 미국의 경상수지 목표제에 반대를 하는 동시에 중국에는 경쟁적 환율저평가로 공격하며 독일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확실하게 인식시켰다. 차기 G20 의장국인 프랑스는 이번 회의 결과에 속으로는 불만이지만 겉으로는 표현을 못하는 상황이다. 무역수지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만큼 불균형을 개선하자는 미국 주장에 찬성하지만 그렇다고 독일과 중국을 비난하며 적으로 돌릴 경우 차기 의장국으로서 입장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여기다 오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의 경우 G20은 정치적인 변수이기도 하다. ◇중국의 ‘빅2’ 부상을 보며 쓴웃음 지은 간 총리=일본은 이번 회의에서 별로 얻은 게 없다. 게다가 중국ㆍ러시아와는 영토분쟁으로 양자회담 한번 갖지 못하고 끝을 냈다. 물론 13~14일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다고는 하지만 일본이 글로벌 무대에서 이렇게 주목 받지 못한 것도 이례적이다. 오히려 통화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 치여 제대로 된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했다. 일본은 당초 미국ㆍ유럽 등과 힘을 합쳐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압박할 방침이었지만 9월15일 엔고를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2조1,000억엔의 대규모 개입(달러 매수)을 한 뒤 국제사회의 비판의 표적이 되면서 명분을 잃고 끌려가는 입장이었다. 여기에 G20의 실력자로 부상한 중국ㆍ러시아와 영토 분쟁을 빚으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발언력을 상실했고 센카쿠 갈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간 나오토 내각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국정 장악력이 약화돼 G20에 전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환율전쟁의 시발점이었지만 정작 환율전쟁의 해법을 찾는 자리에서는 별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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