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땅서 떠돈 한평생 고통·환희 캔버스에

국립현대미술관 '김보현 화업 60년展'


물가에서(1995)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윤수)이 12일부터 덕수궁미술관에서 재미 원로화가 김보현(90) 작가의 60여년에 걸친 화업(畵業)을 조명하는 전시 '고통과 환희의 변주:김보현의 화업 60년'을 개최하고 있다. 1917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태어난 김화백은 18살 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태평양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귀국,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조선대 미술학과 교수로 임용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2년 전 1948년 여수ㆍ순천사건 발발 후 좌익으로 몰려 경찰에 강제 연행, 고문을 당한다. 이후 전쟁이 터진 후에는 우익으로 몰려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그에게 조국은 좌우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고문을 겪었던 곳으로 각인됐다. 1955년 교환교수 자격으로 오른 미국행 비행기는 김보현 화백이 영원히 이국 땅을 떠돌게 하는 계기가 된다. 전시에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 돌아온 그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 수 있는 작품 220여점이 소개된다. 미술관은 비교적 확연하게 바뀐 양식적인 변화를 기준으로 '열정을 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고통과 환희의 변주'라는 소주제로 구분해 작품을 걸었다. '열정을 넘어'에는 조선대 교수시절 자연주의에 입각한 구상작업과 미국으로 건너간 후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으로 거친 붓터치로 그려낸 작품을 모았다. 한국에서 겪은 고통 그리고 슬픔이 그림에 투영돼 있다는 평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에는 그림 자체에 대한 근본 문제를 제기하며 작가의 기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극사실로 사물을 그려낸 작품이 주로 선보인다. 색연필로 파ㆍ양파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생명력을 관찰해 캔버스에 담아낸 작품들이다. '고통과 환희의 변주곡'은 1980년대를 지나며 거대한 화면 속에 자신이 살아온 삶 전체를 드러내는 작품세계가 펼쳐진다. 마티스를 좋아하고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경향을 벗어나지 않은 듯한 흔적이 그의 예술세계를 관통하고 있지만, 수묵의 번짐에서 느낄 수 있는 한국 전통의 먹 맛을 잃지 않은 붓터치가 작품 곳곳에 깃들어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6일까지. (02)2022-0617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