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금융기관에 이어 일부 국내 금융기관에서도 마이너스 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9월 위기설에 이어 다시 3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내년 3, 4월이 되면 중소기업들이 부도날 가능성이 높고 그로 인해 체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대통령실장의 발언까지 나왔다. 1차 금융위기의 파도를 넘기자마자 더 큰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국민도, 시장도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유동성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얼마 전 은행의 기업대출 회피를 질책하는 대통령의 지적이 있었다. 대통령의 말씀대로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추는 등 유동성 완화를 위해 나섰지만 시중에는 돈이 돌고 있지 않다. 유동성 공급을 위해서는 은행이 대출을 늘려야 하지만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서 대출을 회피할 뿐만 아니라 시중에 풀린 자금까지 거둬들이고 있다.
지금은 BIS비율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은행의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BIS비율이 아니라 기본자본(Tier 1)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대출하지 않는다고 질책하기에 앞서 은행의 대출여력을 높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우 주식가치가 희석됨에 따른 기존 주주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고통분담이 달리 필요한 게 아니다. 최고경영자(CEO)들의 연봉을 삭감하는 것과 같은 상징적 조치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은행 전반의 뼈를 깎는 체질개선과 자구노력이 우선이다.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은 그 다음이다.
유동성 위기가 실물경제의 부실이라는 건전성 문제로 전이되고 있는 것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실물경제 부실이 확대돼 치유불능으로 가기 전에 시급히 고강도의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부실에까지 이르지 않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금융기관과 기업을 이른 시일 내에 선별해야 한다. 선별이 늦어질수록 일부 부실이 전체 시스템의 부실로 확대될 수 있다. 일부의 부실을 확실히 털어내는 것만이 희생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구조조정을 민간자율에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하는 이유다.
지금의 경제위기 특히 실물경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으로 적시에 기동력과 집중력을 발휘해 과감하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기초생계 보장기준을 확대하고 상향 조정해야 하며 실업수당도 상향조정하고 실업급여제도는 신축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의 질과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인재를 육성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필요한 가장 한국적인 뉴딜정책이다. 정부가 시장에 신뢰를 주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