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지난달 11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을 등반하면서 “이제 세상은 20세기 이념대립의 시대에서 거버넌스(Governanceㆍ지배구조) 경쟁의 시대로 바뀌고 있다. 피라미드형 지배구조가 네트워크형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며 수평적 분권형 리더십을 강조했다. 사회는 이제 더이상 이념이나 권위에 의한 명령과 강제로 유지될 수 없으며 국가운영은 오로지 국민적 합의에 의해 명분을 획득할 때만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그동안 정치일선에서 진두지휘하는 모습에서 탈피, ‘로드맵’과 ‘시스템’을 통해 관리ㆍ조정하는 쪽으로 사실상 2기 국정운영의 가닥을 잡았다.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정국을 초래할 만큼 대통령이 여야간 첨예한 갈등구조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집권 1기와는 달리 ‘로키(Low keyㆍ軟性)’로 가겠다는 것이다. 결국 노 대통령은 힘있고 강력한 대통령상을 구축하되 차기 총리와 열린우리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청와대 개편과 개각=
노 대통령은 이르면 오는 17, 18일께 청와대 직제개편을 먼저 하고 인적 개편은 21, 22일께 단행할 계획이다. 청와대 개편의 핵은 정무수석실ㆍ참여혁신수석실 폐지와 시민사회수석실 신설, 정책실 기능 강화로 요약된다. 특히 정무수석실 폐지는 야당과의 물밑조율과 밀실정치 등 구시대 개념의 정치는 멀리하고 정책을 중심으로 대(對)국회 관계를 설정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또 6월 하순께 개각을 단행, 정책집행 능력이 강화되고 효율성이 극대화된 정부를 탄생시킬 예정이다. 개각 폭은 통일부를 포함한 5~7개 부처로 중폭이 예상된다. 정동영 당의장, 김근태 전 원내대표, 정세균 전 정책위의장 등 열린우리당측 중진인사 3~4명 정도가 입각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지만 최근 정 의장과 김 대표의 행보가 워낙 가변적이어서 예단하기는 어렵다. 정 의장 등이 당 잔류를 선택할 경우 이부영ㆍ김홍신 등 낙선자들에게 더 많은 입각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다. 김혁규 열린우리당 상임운영위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차기 총리 후보지명은 17대 국회 개원(6월5일)에 앞서 이달 말쯤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경제 살리기 주력=
노 대통령은 집권 2기 국정운영에서 민생과 경제를 최대 화두로 삼을 방침이다. 국내 내수경기가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해 민생이 불안한 가운데 중국의 긴축정책, 미국의 금리인상설, 국제원유가 급등 등 대외 경제환경마저 어려워 경제지표들에 적신호가 켜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 노 대통령은 탄핵기간에 조윤제 경제보좌관을 비롯, 많은 경제학자들과 집중적인 토론과 학습을 갖고 미시와 거시경제문제를 종합적으로 재점검했다. 노 대통령은 토론회에서 케인스ㆍ하이에크의 이론이나 리스트와 슘페터 모델들에 대한 학술적 논의에서부터 기술혁신과 인재양성, 임금격차 해소, 일자리 창출 등 구체적인 현안까지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시장과 유가동향ㆍ중국경제 등 새롭게 돌출되는 경제 현안들도 토론대상으로 삼았다. ◇조용한 경제개혁 박차=
노 대통령은 탄핵기간 토론회에서 “경제문제에서 사회적 주제가 겉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막연한 ‘불확실성’만을 강조하며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인 것이다. 노 대통령은 실제 “재계에서 투자부진의 요인으로 꼽고 있는 규제문제와 관련해 막연한 불확실성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어떤 기업이 무슨 투자를 하려는데 무엇이 어떻게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탄핵 전 노 대통령이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을 때 재계가 반박한 점을 감안할 때 개혁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성장 또는 개혁 우선론에 대해 당분간 명쾌하게 입장을 정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논쟁이 이념논쟁으로 비화되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살 우려가 있음을 청와대가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나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문제 등에 대해서도 아직 청와대의 의중을 확인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