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흑돌 18개를 잡고 간단히 이길 기회를 조훈현이 놓친 이후로 상황은 매우 심각하게 되었다. “싸우는 재미에 빠져서 냉정을 잃었던 모양이에요.” 나중에 조훈현이 고백했다. 미생인 하변 흑대마에 대한 공격의 즐거움을 포기하기가 싫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그 다음의 진행은 백의 가시밭길이었다. 쌍방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내뻗는 본능적인 펀치의 교환 같은 상황. 이렇게 되면 평소에 연마한 내공의 분량이 말을 하게 마련인데 그 방면에서 조훈현이 간발의 차이로 앞서 있었다. 흑59로 그냥 패를 따낸 수순은 왕레이의 감각이 아직 조훈현에게 미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그 수로는 62의 자리에 하나 밀어두는 것이 요긴한 수순이었다. 계속해서 흑61이 패착. 54의 자리에 꽉 이어 우변의 백 15개를 잡아버렸으면 흑승이었다. 좌하귀의 백은 참고도의 1, 3으로 살게 되고 흑대마가 다시 패에 목숨을 의지하게 되지만 A의 자리에 팻감이 3개나 있으므로 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급소인 62의 자리를 놓치지 않은 것이 승착이 되었다. 이것으로 조훈현은 기적적인 재역전을 일구어냈다. 이 판을 이기고 제2국도 쾌승하여 조훈현은 2년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55…53의 위. 66…63의 아래. 68…54) 276수 이하줄임 백불계승 /노승일ㆍ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