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영화채널 A사의 외화 구매담당자는 최근 국내판권을 구입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던 일부 블록버스터 영화를 구매리스트에서 제외했다. 대신 판권가격이 저렴한 B급 영화들을 구입해 방송하기로 했다. 또 한 복수방송채널사용사업자(MPP)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의 비중을 높이기 위한 전략을 짜느라 고심하고 있다. 올들어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자 미디어계도 콘텐츠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인기 외화 시리즈물이나 블록버스터 영화에 의존하고 있는 일부 PP들은 환율 급등에 따른 환차손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자구책을 찾느라 분주하다. 19일 케이블TV 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MPP인 온미디어와 CJ미디어는 최근 외화 콘텐츠의 물량조정에 나섰다. 환율이 급등하다보니 블록버스터 영화나 A급 시리즈물의 판권 가격이 급상승했기 때문. 지난 1월2일 936.9원(종가기준)이었던 원ㆍ달러 환율이 지난 16일 1,160.0원로 급등하면서 외화의 국내판권 가격이 23.8% 가량 높아진 셈이다. 온미디어는 연초 사업계획 작성 당시 기준환율을 1,030원로 비교적 높게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크게 오르자 올 상반기에만 9,437만원의 외환차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369만원의 25배를 웃도는 수준. 더구나 하반기 들어서는 환차손 규모가 더욱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온미디어 관계자는 "환율 상승으로 수입 콘텐츠의 물량을 조절해야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면서 "일부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우 판권 가격이 수억원에 이르는 만큼 구입시기를 늦추거나 B급 콘텐츠의 구매 비중을 높이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대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기준환율을 950원대로 잡았던 CJ미디어도 환차손이 크게 늘어나자 주요 메이저 영화사나 외화 배급사와 지불조건을 재조정하거나 구매물량을 출이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CJ미디어 관계자는 "외화 구매량을 소폭 줄이거나 대금 지급을 늦추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환차손 부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또 강석희 CJ미디어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환차손에 대한 대안은 자체 제작을 늘리는 방법 외엔 없다"면서 "저렴하게 자체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 제작비를 많이 투입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의식을 바꾸게 하는 게 과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외화 구매 비중이 낮거나 비교적 저렴한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PP도 환율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는 마찬가지. 일찌감치 주요 프로그램을 구매해둔 일부 PP들은 현재 환차손 부담에서 다소 자유롭지만 환율의 고공행진이 이어질 경우 내년도 방영분에 대한 가격부담을 안아야한다. 중앙방송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환차손이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면서 "그러나 환율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내년도 방영분에 대한 계약때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차손의 불똥은 재정상황이 넉넉치 않은 지상파 방송사 EBS에도 떨어지고 있다. 애니메이션 등 어린이 프로그램과 각종 다큐멘터리 등을 수입하고 있는 EBS는 올초 책정한 외화수입 예산 200만달러로는 연말까지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EBS 편성센터의 한 관계자는 "회사 재정 상황이 녹녹치 않아 외화 프로그램 수입 예산을 증액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환율이 안정되면 그나마 비용 부담이 덜 수 있으리라는 판단 아래 해외 공급사측에 비용지급 시기를 늦춰달라고 사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율 상승은 인터넷TV(IPTV) 판권 계약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IPTV 상용화를 앞두고 국내 방송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PP들은 일부 해외 콘텐츠제작사로부터 IPTV에 대한 판권을 별도로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라 IPTV 판권을 구입하려면 추가적인 비용에다 환차손까지 떠안아야하기 때문이다. 케이블TV협회 관계자는 "PP업계가 IPTV 판권에다 환차손까지 이중부담을 떠안고 있는 형편이라 IPTV가 상용화되더라도 기존 케이블방송이나 위성방송의 주요 프로그램을 IPTV에서 그대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