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 '무모한 이학순씨'

삶의 무게에 짓눌린 주인공 어설픈 자살 시도하는데…


삶의 무게는 한없이 무겁다. 악착같이 벌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다. 서글픈 현실은 우스꽝스러운 주인공의 자살 계획으로 희석된다. 무대는 꾀죄죄한 돼지곱창집. 억척스러운 가게 주인 순열의 단잠을 깨우며 주차장 관리인 학순이 등장한다. 학순은 택시기사 종문과 백수 사성을 가게로 불러들인다. 오랜 친구들 앞에 보험서류를 보이며 학순이 말한다. “나 좀 죽여주라. 생명보험 있는대로 들어놨다. 보험금 타서 우리 명배, 우라질 놈의 여편네, 우리 순열이 누나 호강시켜달라니까. 니들한테 돈 빌린 거도 그거루 다.” 가장의 의무와 역할을 죽어서야 이룰 수 밖에 없는 모순적 현실은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과 맞닿아 있다. ‘세일즈맨…’의 주인공 윌리 노먼이 자동차의 가속 페달을 밟으며 죽음의 질주를 하듯 이학순 씨는 두 친구를 내몰며 죽음을 재촉한다. 극의 상황적 아이러니는 여기서 나타난다. ‘세일즈맨..’에서와 달리 무모한 이학순씨의 자살 계획은 슬프다기보다 우습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게 쌓인 맥주 박스를 학순의 머리 위에서 무너뜨렸건만 그는 한 손가락에 깁스를 하고 다시 등장한다. 식당 벽에 걸린 선풍기 전깃줄에 목을 감지만 줄이 너무 길어 발이 땅에 닿아버린다. 어설픈 그의 자살 계획을 눈치챈 사촌누나 순열이 학순의 마음을 되돌린다. 웨딩드레스도 못 입고 결혼한 학순 부부를 위해 학순이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희망을 되찾고 결혼 반지를 사러 나가는 학순에게 뜻밖의 사고가 생긴다. 도로가 무너지면서 학순과 친구들이 지하에 갇히게 된 것. 자살할 기회를 번번히 놓친 학순에게 드디어 온전히 보험금을 타낼 기회가 생겼다. 그의 선택은 역시 무모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구성지고 질박했다. 이학순 역의 김세동 씨는 완급을 조절하며 관객의 숨 고르기를 도왔고, 이순열 역의 염혜란 씨는 객석의 웃음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냈다. 소극장 무대지만 장면 전환이 가미된 점도 인상적이다. 맥주 박스가 쌓여 있는 시장 골목과 지하 바닥을 간단한 장치를 통해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극의 결말이 우연에 의존한다는 점을 제외하곤 극본과 연출을 맡은 신예 연출가 위기훈의 표현력에 무난한 점수를 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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