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소 화백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웃고 있다. 그림 속 이미지는 오리, 배, 구름처럼 보이지만 작품 제목은'무 제'다. /사진제공=갤러리현대
|
|
이 그림이 무엇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가. 대부분이 '오리'라고 답한다. 하지만 오리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가. 눈도 날개도 물갈퀴도 없는데다 어찌 보면 배나 물결 혹은 구름으로도 보일 수 있는데 말이다.
이 '오리 그림'으로 유명한 중견작가 이강소(66)의 89년부터 최근까지 20년 화업을 결산하는 대형 전시가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 앞서 만난 작가는 "내가 그린 것은 오리가 아니며 단지 붓을 휘둘렀을 뿐인데, 관람객이 오리와 물과 안개의 '관계성'을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뭔가를 '느끼라'는 게 아니라 그 발견에서 시작해 '마음대로 상상하고 회상하라'는 것"이라며 "나는 멍석을 깔아놓았을 뿐이니 마음껏 즐기시라"고 덧붙였다. "작가는 이미지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빌린 것(차용)'"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오리 화가'와 두발 짐승의 인연은 75년 파리비엔날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시장 바닥에 밀가루를 깔아놓고 살아있는 닭을 풀어놓은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닭이 움직인 흔적은 그대로 실험성 강한 작품이 됐고, 유럽 화단이 한국의 개념미술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앞서 73년 명동화랑에서의 첫 개인전에는 실제 선술집의 낡은 탁자를 화랑 안으로 옮겨와 막걸리를 팔면서 '관람객과 작품간 소통의 문제'를 파격적으로 표현했다.
다양한 실험예술을 펼치던 이강소는 88년부터 화폭에 구체적인(것 같은) 이미지를 그리기 시작했다. 흰색ㆍ회색ㆍ청색의 은은한 바탕을 가르는 힘찬 붓질은 한국의 문인화적 필치와 서양의 추상표현주의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오래된 작품은 89년작 '사슴'이며 92년 테이트갤러리 출품작과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사진과 도자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내 눈이 아닌 '타자'의 눈으로 보고자 사진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작가는 "많은 사람이 스쳐갔던, 시간이 중첩된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미처 눈으로 보지 못한 것들이 포착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율을 일으킨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그의 사진에는 누군가 방금 다녀간 듯한 기운이 돈다. '인절미' '메주' 등의 별명이 붙은 추상도자 작품은 마구 주무른 흙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쌓아 구워낸 테라코타로,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로운 붓질로 화면을 채우는 회화 작업과도 맥을 같이한다. 전시는 27일까지 열리며, 갤러리현대 신관부터 본관 순으로 감상하면 총 100여 점 작품을 시기별로 볼 수 있다. (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