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자력정책 '방치' 안된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사무총장 서중석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사무총장 서중석
며칠 전 한 모임에서 건설회사 임원을 만났는데 그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원자력발전소 건설계약을 수주한 지가 1년이 넘었지만 건설허가가 나오지 않아 아직도 공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두달 내에 해결이 안되면 현장 직원들을 당분간 다른 사업장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짓는다.
국가 에너지정책의 근간
지난 70년대 석유위기 당시 우리는 경제와 국민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를 넘나들면서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이러한 유가급등은 중동 지역의 정치적 불안정이 주원인이나 최근에는 세계의 원자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 때문에 각국이 석유확보를 둘러싸고 다투는 시대가 오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원유가격이 오르면 다른 화석연료의 가격도 보통 함께 상승하기 때문에 발전소의 경제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발전원가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전원별 구성비는 중유발전이 78%, 가스 73%, 유연탄 47%, 그리고 원자력 13%로서 원자력발전의 연료비가 가장 낮다. 우라늄은 에너지 밀도가 높아 한번 장전되면 보통 4년간 원자로 속에서 열을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므로 연료를 비축한 것과 같은 특성을 갖는다. 때문에 발전용 연료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원자력발전이 가장 이상적인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78년 고리 1호기가 처음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래 원자력발전은 현재 국내 전력의 40%를 공급함으로써 국내 에너지정책의 기초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환경단체들이 원자력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면서 원자력발전정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일부 환경단체들은 원전수거물센터의 건립은 물론 원전 중심의 국가 에너지정책이 재검토돼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원전수거물센터 부지 확보는 원전 운영자뿐만 아니라 국내 원자력산업계 전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왜냐하면 수년 내에 각 원전 부지 내의 원전수거물 저장공간이 모두 포화되면 신규 원전은 고사하고 운영 중인 원전도 정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사용 후 연료 등 고준위 폐기물 처리에 대한 기술적ㆍ정책적 대응방안이 마련되기도 전에 원전수거물센터 부지부터 선정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하나 이해하기 어렵다.
프랑스ㆍ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원전 국가들은 사용 후 연료를 위한 중간저장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은 네바다주의 유카마운틴에 영구처분장을 의회의 승인받아 건설 중이다. 일본도 사용 후 연료의 발전소 내 보관이 곧 한계에 도달하게 되기 때문에 중간저장을 서두르고 있다. 실제로 도쿄전력은 아오모리현과 무쓰시에 입지협력을 정식으로 요청한 상태이다.
우리도 원전수거물센터 부지 선정을 서둘러야 한다. 부지가 선정되더라도 원전 부지에 준하는 세부 지질조사를 해야 하고 저장시설의 설계ㆍ건설 및 시험과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준공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지역 주민들로부터 유치신청을 받아 원전수거물 부지 선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번에는 ‘부안사태’를 교훈 삼아 다시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재검토 주장' 현실성 없어
미국ㆍ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기저부하 전원의 공급을 원자력발전에 의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것이다. 더욱이 에너지 부존자원이 전무하다시피한 우리로서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의존이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원개발 계획에 들어 있는 신규 원전들이 제때 착공을 못하고 있으며 원전수거물 부지 선정도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환경단체는 현실적인 대안 없이 에너지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외환위기 때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전력 IMF’가 올 수도 있다. 전력은 국가 경제성장과 국민생활의 주춧돌이다. 주춧돌이 흔들리면 안되듯이 우리 에너지정책도 흔들려서는 안된다.
입력시간 : 2004-07-12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