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中企업계 逆轉을 기다리며

박봉수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지금 우리의 중소기업은 국경 없는 변혁의 풍랑 속에서 조만간 생존을 걸고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글로벌화가 가져온 세계적 분업의 파고는 ‘경쟁력을 지니지 못한 기업은 더 이상 시장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정글의 법칙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지난 60년대 이후 우리 중소기업은 사회경제적 약자라는 입장에서 정부의 보호와 지원의 병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은 활발한 다수로서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뒤떨어진 기술력, 답보적인 경영행태, 열악한 기업환경 등은 마침내 중소기업으로 하여금 해외진출이라는 돌파구로 생존을 위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지난 40년간 지속돼온 중소기업 정책이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전진도 후퇴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버린 것이다. 사실 요즘 같은 디지털 경제에서 중소기업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기업형태가 아닐 수 없다. 다양화ㆍ개성화되고 있는 소비자, 빠른 라이프사이클을 지닌 상품에 대한 전문성과 유연성, 기민성과 창의성이라는 특성을 지닌 중소기업만이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각국이 중소기업을 중시하는 이유는 중소기업 본연의 기능에 있다. 중소기업은 지역을 거점으로 역동적인 활동을 통해 경제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들은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기술혁신을 이끌어내며 고용을 창출한다. 그래서 중소기업은 ‘경제 내의 묘목’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미래의 성장주체로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우리 경제의 당면과제를 해결하고 세계화ㆍ정보화 시대를 맞아 기술혁신에 의한 창조와 도전정신을 확산시키는 데 그 무엇보다 중소기업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중소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안고 있는 굴레를 벗겨줘 미래의 주역으로 거듭나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첫째, 지원목적을 지난날과 같은 저변확대에서 구조개선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구조개선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 내수기업이든 수출기업이든 그들은 역량강화를 꾀하고 있다. 비주력 산업은 고부가가치화를, 전통적으로 내수에만 의존하던 기업은 해외진출을 열망하고 있다. 낙후지역에서는 특성화 산업을 일으키려 하고 경쟁력이 부족한 기업은 해외이전을 시도하고 있다. 구조개선은 자원의 활용 측면에서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해 산업계에서 퇴출되는 순간 사장될 경영노하우ㆍ기술력ㆍ영업망ㆍ수출선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가치를 적극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검증되지 않은 기업에 대한 일시적 형태의 자금지원은 지양돼야 한다. 단기적이고 특수한 유동성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국가차원에서의 금융지원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을 벗어난 자금지원은 오히려 경쟁력 있는 다른 기업을 끌어내려 궁극적으로는 중소기업 전반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셋째, 70년대 중반에 도입돼 지금은 중소기업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도가 가장 높은 보증제도의 손실분담시스템을 재정립해야 한다. 한 기관이 일방적으로 손실을 부담해온 현행 시스템을 바꿔 보증시장의 참여자인 보증기관ㆍ중소기업ㆍ금융기관, 그리고 정부 등이 역할에 따른 책임을 분담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당연히 보증기관은 기업에 대한 평가결과에 1차적 책임을 져야 함이 옳다. 기업은 경제적 효용을 향유한 만큼 시장가격에 의한 부담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중개자인 금융기관도 금융상거래에서 발생하는 편익에 따른 응분의 보상을 해야 한다. 정책당국도 보증시장의 존립과 보증상품 도입에 따른 최종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함은 물론이다. 스포츠 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상황을 역전하는 묘미가 그 만큼 극적이라는 말이다. 현재 중소업계도 이러한 역전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우리 경제 구성원 모두가 어느 한 부문으로 치우침 없는 마음가짐으로 중소기업의 역전에 힘을 모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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