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만드는 미생물' 상용화 눈앞

유전자 변형 미생물을 활용한 대량 석유생산이 실현되면 전세계 모든 국가가 산유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석유 만드는 미생물' 상용화 눈앞 양철승 파퓰러사이언스 기자 csyang@sed.co.kr 유전자 변형 미생물을 활용한 대량 석유생산이 실현되면 전세계 모든 국가가 산유국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기존 석유를 대체할 주요 에너지인 에탄올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파이프라인을 부식시키기 때문에 현재의 운송 인프라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에너지 밀도 역시 석유보다 낮다. 이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은 미생물을 이용해 무공해 가솔린, 제트연료, 그리고 디젤유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와중에 미국의 벤처기업 아미리스 바이오테크놀로지스는 유전자 변형된 대장균을 이용해 석유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개발,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유전자 변형된 미생물이 사탕수수 등 식물의 당분을 먹고 부산물로 석유를 배출해내는 것이다. 미생물이 석유시추선 역할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머빌에 위치한 바이오 벤처기업 아미리스 바이오테크놀로지스사는 자사를 석유시추선 개발업체라고 말한다. 물론 바다 위에서 웅장한 몸집을 뽐내는 그 석유시추선은 아니다. 이 회사의 석유시추선은 크기가 수 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간신히 보일 정도다. 시추 현장 또한 땅속이 아닌 실험실이다. 아미리스의 석유시추선은 다름 아닌 미생물이다. 황당한 얘기 같지만 실제 이 회사는 최근 사탕수수 등 식물에 함유된 당분을 섭취하고 그 부산물로 탄화수소계 화석연료를 배출하는 유전자 변형 대장균 개발에 성공했다. 특정 효소의 생성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대장균에 삽입, 이 대장균이 당분을 화석연료로 전환해주는 일련의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미리스는 지난 수년간 수많은 종류의 유기체들과 밤낮 없이 씨름을 해야 했다. 어떤 미생물에 어떤 유기체의 유전자를 삽입해야 물질대사 과정에서 이처럼 신비한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지 알아내기 위해서다. 결국 수백만번의 실험 끝에 아미리스는 얼마 전 이 같은 기적의 능력을 보유한 대장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실험 결과 이 대장균은 사탕수수의 당분을 먹고 배설물로 가솔린ㆍ디젤유ㆍ제트유 등을 배출해낸다. 땅을 파거나 대형 시추플랜트가 필요하지 않은 만큼 생산단가가 저렴한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가솔린ㆍ디젤유ㆍ제트유 등과 화학성분이 너무나 유사해 별도의 정제공정 없이 곧바로 사용해도 무방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료로서의 효용성은 오히려 기존 화석연료를 뛰어넘는다. 일례로 기존 제트유는 어는점이 약 -40℃에 불과한데 비해 대장균이 만든 제트유는 -57℃나 됐다. 어는점이 낮으면 항공기가 더 높은 고도에서 비행할 수 있으며 극지를 비롯한 혹한의 지역에서도 연료가 얼어붙을 가능성이 적다. 초기 단계의 성공에 불과하지만 유전자 변형 미생물을 활용, 화석연료를 인공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화석연료 시대의 연장 처음 아미리스가 유전자 변형 미생물을 활용한 석유생산에 뛰어든 것은 석유 대체물질로 주목받고 있는 바이오 에탄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실제 에탄올은 옥수수와 사탕수수를 원료로 생산되는 친환경 에너지지만 파이프라인을 부식시켜 기존의 인프라를 전혀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 한계다. 에너지 밀도 역시 기존 석유보다 낮아 효율이 떨어진다. 바이오디젤ㆍ수소ㆍ가스하이드레이트 등 차세대 에너지 대부분이 이와 비슷한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 반면 유전자 변형 대장균으로 만들어낸 연료는 지금 주유소에서 팔고 있는 가솔린ㆍ디젤유 등과 유사하다. 천문학적인 신규 투자 없이 지금의 자동차 엔진과 화석연료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아미리스는 화석연료 고갈이라는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이 회사의 잭 뉴먼 사장은 “고갈 위험만 해소된다면 굳이 수십년의 기계공학적 혁신을 거쳐 최적화된 화석연료 시스템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며 “유전자 변형 대장균은 화석연료시대의 생명연장을 실현시켜줄 꿈의 소재”라고 강조한다. 현재 아미리스는 이 기술의 상용화를 위한 전 단계로 유전자 변형 대장균을 대형 양조용기에서 배양하며 고온ㆍ고압과 같은 각종 유해환경에 노출시키고 있다. 이들은 현실적으로 실험실과는 차원이 다른 가혹한 환경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악조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뉴먼 사장은 “유전자 변형 대장균에 기반을 둔 상용 석유생산시스템 개발에 성공할 경우 전세계 모든 국가가 산유국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며 “설령 이 기술이 세계를 고유가 위기에서 구해낼 수는 없더라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대량생산 입증이 과제 특정 목적을 위해 맞춤형 생명체를 합성하는 ‘인공생물학’으로 연료를 생산하려는 기업은 아미리스만이 아니다. 석유 재벌인 BP사는 듀폰과 함께 유전자 변형 미생물로 부탄올을 생산하려고 하고 있다. BP는 또한 노벨의학상 수상자인 해밀턴 스미스 박사가 세운 신테틱 지노믹사에도 거액을 투자, 식물에서 바이오연료를 추출하는 미생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의 신생기업 LS9사는 아미리스와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유전자 변형 미생물을 활용한 원유 제조에 나서는 등 10여개의 기업이 미생물을 이용해 연료를 생산하는 연구에 매진 중이다. 다만 문제는 이들 모두가 아직은 실험실연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LS9의 스테판 카데어 부사장은 “사람들은 미생물 연료의 이점은 인정하지만 대량생산 여부에는 항상 의구심을 표명한다”며 “대량생산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우리 업계의 최우선 과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 같은 의구심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아미리스가 지난해 말 DAG벤처스 컨소시엄으로부터 투자받은 7,000만달러를 종자돈 삼아 업계 최초로 파일럿플랜트 건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중 가동될 이 파일럿플랜트는 월 160~380리터의 연료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아미리스는 본사 인근에 1,860㎡의 부지 확보를 완료했으며 브라질의 한 설탕기업과 제휴를 체결해 원재료인 사탕수수의 대량 공급망도 구축했다. 뉴먼 사장은 “최소비용으로 대량 연료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파일럿플랜트로 얻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라며 “상용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돌발 변수들이 속출하겠지만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무리 없이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의 예상대로 이 파일럿플랜트가 성공리에 운용될 경우 아미리스는 플랜트의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오는 2010년경 상용 플랜트 가동에 돌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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