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동산 투기 뿌리 뽑자

사회 양극화 문제로 비화
정부·국민 함께 나서야

참여정부가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부동산투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지도자뿐 아니라 일반서민 모두가 마음고생이 심하다. 사실 투기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됐다. 토지투기가 처음 일어난 때는 로마시대였다. 기원전 264~146년에 로마는 한니발이 이끈 카르타고와 세 차례 포에니전쟁을 치렀다. 이 전쟁에서 이긴 로마는 점령지의 토지를 귀족과 군인에게 하사했다. 로마 귀족은 토지투기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이 돈으로 로마에서 호화롭게 생활했다. 주택투기의 효시도 로마시대였다. 로마가 서구를 지배하면서 인구가 계속 유입돼 주택이 부족했다. 귀족과 장군 등 대규모 토지소유자들은 로마에 2~3층의 연립주택을 대량으로 지어 임대했다. 그 과정에서 주택투기가 성행했다. 불량하면서 밀집된 이들 연립주택으로 로마는 주기적으로 화재가 발생했다. 로마 화재의 결정판은 서기 64년 네로황제 때 일어났다. 그 네로황제의 스승으로 알려진 세네카 역시 주택투기로 악명 높았다. 지난 1848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발표한 공산당 선언의 배경에는 주택투기가 있다. 이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수많은 농민이 도시로 몰려와 산업근로자가 됐다. 그 결과 주택이 크게 부족했다. 투기꾼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4~5층의 연립주택을 지어 임대했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이들 주택에는 위생시설마저 구비되지 않았다. 마치 70년대 구로공단 근처에 지어졌던 근로자 셋방, 일명 ‘닭장’과 같았다. 이들의 가혹한 삶은 1838년 찰스 디킨스가 펴낸 ‘올리버 트위스트’ 속에 적나라하게 기술돼 있다. 마르크스는 런던 빈민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택투기의 실상과 그로 인한 근로자의 비참한 생활을 지켜보면서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공산당 선언을 제창하게 되었다. 국토는 좁지만 인구가 많아 우리와 여건이 흡사한 나라가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본래 ‘낮은 땅’이라는 뜻이다. 바다를 막고 그 안의 물을 퍼내서 만든 땅이 바다보다 ‘낮다’는 의미다. 토지가 희소하나 인구는 많기 때문에 부동산투기가 극성을 피울 만한 여건이 딱 갖춰져 있다. 그러나 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90년대까지 네덜란드의 땅값은 그대로였다. 17세기 튤립투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에서 부동산투기는 재연되지 않았다. 부동산투기는 결국 국민 모두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것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절실히 인식한 결과이다. 이 때문에 세계화 과정에서 각국이 소득의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을 때 네덜란드만은 오히려 소득 불평등이 줄었다고 90년대 중반의 한 보고서는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투기가 언급되기 시작한 때가 64년이다. 이때부터 정부는 부동산가격 안정과 부동산투기 억제를 위한 갖가지 정책을 시행해왔다. 그러나 부동산투기는 이제 ‘부익부 빈익빈’ 문제를 뛰어넘어 사회의 ‘양극화’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백약이 무효인 것처럼 보인다. 언제까지 이 문제를 정부 책임으로만 돌릴 것인가.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설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춘추시대 제나라 명상 관중은 이렇게 말했다. ‘지자정지본야. 시고지가이정정야. 지부평균조화칙정부가정야. (地者政之本也. 是故地可以正政也. 地不平均調和則政不可正也.)’ 토지는 정치의 근본이다. 그러므로 토지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토지가 고르지 못하고 조화를 잃으면 정치는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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