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초 법정관리상태에서 잔뜩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인천정유(현재 SK인천정유)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당시 고유가 추세로 방향족의 국제시세가 껑충 뛰면서 회사에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천정유는 곧바로 연산 74만톤 규모의 방향족 설비(BTX:벤젠ㆍ톨루엔ㆍ자일렌)를 100% 풀가동하기 시작했고 결국 적자를 흑자로 바꾸는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제1원유정제 설비(넘버1 CDU:상압증류시설) 가동이 완전 중단된 터에 제2 정제공장으로 버티던 회사 입장에선 ‘가뭄의 단비’격이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2년동안 BTX로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 같은 실적호전 덕택에 인천정유는 M&A시장에서 매력있는 신부감으로 변신한뒤 결국 올3월 국내 1위 정유사인 SK㈜의 품에 안겼다. 미운 오리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탈바꿈한 것이다. ◇정유사, 화학서 돈번다=BTX를 앞세운 SK인천정유의 기사회생은 물론 석유화학 세계경기가 크게 호전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만약 SK인천정유가 원유정제설비만 보유했다면 이 같은 호기를 100% 활용하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다. 인천정유의 예에서 보듯 고유가는 기초유분 등 석유화학 제품의 가격을 밀어올린다. 특히 원유정제 뒤 나오는 나프타를 이용해 만든 1차 파생상품들의 마진은 어떤 석유화학제품보다 짭짤하다. GS칼텍스 관계자는 “톤당 500달러 대의 원유를 들여와 정제한 나프타를 600달러대 판다”며 “그러나 이를 한번 더 처리해 방향족을 만들면 현재 1,000달러 이상으로 팔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투자 여력이 있는 정유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운스트림(하류사업부문)인 석유화학 설비 신증설에 집중해왔다. 국내 정유사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곳은 SK㈜. SK㈜는 국내 정유사중 유일하게 NCC(나프타크래킹센터)를 보유하고 있어 시너지 효과가 가장 크다. GS칼텍스 등 다른 정유사들은 원유를 정제한 나프타를 여천NCC, LG석유화학, 호남석유화학 등 NCC업체에 공급한다. 연산 73만톤 규모의 NCC를 보유한 SK㈜는 이를 이용해 에틸렌, 프로필렌 등 올레핀계 기초유분을 생산해 플라스틱이나 화학섬유의 원료들을 만들어 국내외에 팔고 있다. 당연히 수직계열화 일관생산체제로 높은 부가가가치를 얻고 있다. 실제로 SK㈜는 화학사업분야에서 지난해 총매출 21조9,146억원의 20.02%인 4조8,252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35.5%인 4,277억원을 올렸다. 회사 관계자는 “화학사업의 영업이익률이 8.87%로 석유사업분야의 2.92%보다 월등히 높다”고 설명했다. 석유협회에 따르면 최근 3년중 시황이 가장 좋았던 2004년 국내 5개 정유사 총매출 40조원 중 화학사업 매출비중은 11조원으로 절반에 크게 못 미쳤다. 하지만 화학사업 이익은 2조2,392억원으로 51%를 차지, 정유사 이익의 절반을 넘었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석유화학 경기에 좌우되지만 다운스트림이 강한 정유사들이 이익이 커진다”며 “화학사업은 원유개발과 함께 정유사를 이끄는 쌍두마차”라고 말했다. ◇화학설비 경쟁력 최고=다른 정유사들은 비록 NCC가 없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프타를 접촉개질해 방향족을 만드는 BTX설비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 설비들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GS칼텍스는 SK㈜가 증설을 완료하기 전인 지난 5월까지 명실상부한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인 BTX 공장을 운영해왔다. 폴리에스테르 산업의 기초원료인 파라자일렌 120만 톤과 합성수지 원료인 벤젠 77만 톤을 비롯, 톨루엔 15만 톤, 혼합자일렌 8만톤 등을 생산하고 있다. 또 도료ㆍ잉크ㆍ농약ㆍ드라이크리닝 등에 사용되는 다양하고 우수한 용제 제품도 만들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사업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1988년 삼양사, 일본 미쯔비시화학과 합작으로 삼남석유화학을 설립, 국내 최대규모인 160만 톤의 테레프탈산(TPA)을 공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S-Oil은 지난 91년 4월 나프타개질시설(Naphtha Reforming Plant)과 BTX생산시설을 상업 가동, 사업다각화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꾸준한 증설과 공정개선 노력을 통해 현재 나프타 개질시설은 하루 4만5,000배럴, BTX 생산시설은 연산 90만톤 규모에 이르고 있다. 또 1997년 12월 기존 공장부지 내에 단일공정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연산 65만톤의 파라자일렌을 생산하는 자일렌센터(Xylene Center)의 건설을 완료, 높은 경쟁력을 갖췄다. 연산 47만톤 규모의 BTX설비를 갖고 있는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스페인의 정유ㆍ석유화학사인 CEPSA와 함께 60만톤 규모의 방향족공장과 큐멘 30만톤 생산시설을 건설키로 하는등 화학사업을 대폭 확대해 나가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연산 137만톤 이상의 기초 방향족 제품과 큐멘을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보유하게 된다”며 “방향족 제품 중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파라자일렌을 주로 생산하게 돼 생산원가와 공장 가동효율 측면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 방향족공장 세계1위 국내社끼리 '엎치락 뒤치락' SK㈜, 연산 269만톤으로 추가 증설…220만톤 GS칼텍스 여수공장 곧 추월 '세계 1~2위 방향족 공장은 어디에 있나' 방향족 공장은 벤젠ㆍ톨루엔ㆍ자일렌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 내는 석유정제분야의 '황금거위'. 그렇지 않아도 값이 비싼데 최근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톤당 1,000달러를 훌쩍 넘어설 정도로 가격이 치솟고 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벌써 짐작했겠지만 이 시각 현재 세계 1위 공장은 GS칼텍스 여수공장이다. 이곳에선 연산 220만톤의 방향족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구축돼 세계 정유업계의 부러움을 받아왔다. 그렇다면 세계 2위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만간 GS칼텍스 여수공장은 세계 1위에서 2위로 자리를 바꾼다. 하지만 새로 등장하는 세계 1위 역시 한국의 SK㈜. 이 회사는 지난 2004년부터 BTX 추가 증설에 나서 연산 200만톤을 269만톤으로 늘려 이달초 정상가동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세계 1~2위 방향족 공장을 모두 우리나라가 보유하게 됐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초 톤당 600달러 후반대까지 하락했던 벤젠은 3월 셋째 주부터 반등, 6월초 1,000달러를 돌파했다. 톨루엔과 자일렌도 사상 처음으로 1,000달러를 넘어서며 최고가를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유 정제과정에서 생산되는 나프타를 석유화학 공장에 바로 판매하는 것보다 방향족 제품을 생산할 경우 톤당 적게는 400달러에서 많게는 700달러까지 추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며 "최근 원유정제마진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있어 국내 정유사들이 BTX 증설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참고로 벤젠, 톨루엔, 자일렌을 일컫는 BTX는 제품의 냄새가 좋은 향기에 가깝다고 해서 '방향'계열로 불린다. BTX는 전기용품, 전기ㆍ자동차부품 등을 만드는 스티렌모노머, 나이론섬유, 합성수지의 원료가 되는 카프로락탐, 폴리에스터섬유 등을 뽑아내는 TPA 등의 기초 원료가 된다. 범용성 중간재인 만큼 수요가 많을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