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허용등 유보 배경] 노사안정 위해 쟁점 일단 봉합
'노동계는 실리를, 재계는 안정을.'
99년부터 노사간 쟁점 사안이었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허용 시기가 5년간 유보됨으로써 올 노사관계의 최대 현안이 봉합 됐다. 이에 따라 노동계는 앞으로 5년간 전임자 임금을 보장 받고, 재계는 복수노조 허용유보로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열매를 챙길 수 있게 됐다.
◇왜 유보했나=정부는 지난 97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을 제정하면서 2002년부터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금지하고 이를 어긴 사업주는 처벌키로 했다. 대신 노동계에는 한 사업장에 2개 이상의 노조가 설립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유화책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를, 경영계는 복수노조의 허용금지를 주장해 접점을 찾지 못했다. 노동계는 노조전임자의 임금지급을 금지한 조항이 그대로 실시될 경우 상당수의 사업장에서 노조의 존재 자체가 위협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해 왔다.
특히 한국노총은 노조전임자를 둘 수 있는 사업장의 노동자가 당초 안대로 300명을 기준으로 할 경우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했다. 한국노총 산별 노조는 300명 미만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복수노조 허용문제는 노동계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한국노총은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민주노총 계열 조합원들이 대거 이탈할 것이라고 예상해 왔고,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 노조간부 역시 내심 복수노조 출현을 달갑지 않게 여겨왔다.
◇올봄 극한대립 고비넘겨 =기업ㆍ금융ㆍ공공ㆍ노동 등 4대 개혁과제 중 실적이 가장 부진했던 노동 분야에서 모처럼 합의를 이룬 것은 큰 성과다. 그 동안 노사정위가 합의안 도출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김호진 노동부장관이 경제5단체장 및 노총 지도부와 꾸준하게 접촉을 가진 것도 큰 힘으로 작용했다. 지난 2일 노동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양대 노동현안에 대한 조기합의를 지시한 것도 김 장관의 행보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에 따라 올 봄 날카로운 대치상황을 연출할 것으로 예상됐던 노사관계는 상당기간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 입장에서는 숙원사업의 하나인 전임자임금을 확보한데다 지난 97년 이후 생겨난 신규노조도 사용자와 자율교섭에 따라 전임자의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역시 노사분규라는 악몽에서 벗어나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숙제 미뤘다'비판도 =이번 합의가 당장 노사안정에 기여할 지 모르나 노사담합으로 '숙제'를 미뤄 놓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노조전임자 급여를 사용자가 지원하는 것은 민주성과 자주성을 근간으로 하는 노동조합의 원칙에 위배되고 복수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것도 근로자의 단결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복수노조 문제의 경우 이미 정부가 ILO의 9차례에 걸친 권고를 받아들여 허용할 것이라고 통보해 놓은 상황에서 또다시 시행시기를 늦춘 것은 대외신인도 하락을 부르고, 노동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벗는데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대세다. 민주노총이 "복수노조 허용금지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오는 13일 산별대표자 회의를 열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박상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