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지난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누가 불법자금을 많이 받았는가 적게 받았는가가 마치 구태정치와 새 정치를 가르는 잣대처럼 성격이 변질돼 오르내리고 있다. 구태정치의 전형적인 단면이다. 국민들은 그렇지 않아도 실업사태와 신용카드 빚 등으로 생계유지조차 벅찬 판에 이렇게 본말이 전도된 정치판에 역겨움을 느끼고 분노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의 16일 특별기자회견에서나마 희망의 싹을 발견하고 싶었던 국민들의 소망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 같은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10분의 1발언 책임진다 = 노 대통령은 예상 대로 “성역없이 수사를 받겠다”며 한나라당 이회창 전 후보의 “모든 짐 지고 감옥에 가겠다”는 발언에 맞불을 놨다. 검찰에서 수사상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조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이었다.
기왕에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마당에 모든 것을 털고 넘어가야 하며 여기에는 대통령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또 대선자금 10분의 1발언과 관련해 “그말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가”라며 자문한 뒤 “예 그부분은 제가 결코 임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자신없이 그렇게 헛소리 한 것은 아니다”라며 정계 은퇴를 결행할 수도 있음을 분명히 했다.
적게 받았으면 면죄부가 주어지나 =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 “제가 이것을 가지고 국민들한테 무슨 폭탄선언을 한다든지 또는 무슨 승부수를 던진다든지 하는 그런 목적으로 말씀드린 것은 아니다”라며 야당을 겨냥했다. 또 괜히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지 말아라는 뜻으로 10분의 1 얘기를 꺼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저는 10분의 1을 넘지 않는다고 확신을 가지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이 말은 그러나 받은 액수야 어떻든 한나라당이 받은 불법 자금보다 10분의 1이하만 되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져 역으로 투명정치를 표방해 온 자신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반작용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노대통령은 지난 15일 이회창 전 총재가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을 지켜본 느낌을 언급하면서 “제 스스로도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나. 50보 100보 아니겠나”라고 말해 불법대선자금 모금과 사용사실을 시인했다.
◇면책은 없던일로 = 노 대통령은 정치인, 기업인등 대선자금 관련 당사자들에 대한 면책발언에 대해 “지난 7월 고해성사후 면책 특권 제안은 조금은 비현실적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어떻든 수사가 이렇게 갈 수밖에 없다”며 면책 제안의 실수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SK, 삼성, LG, 현대차등 기업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쉽게 수그러들 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총선이후에라도 이번에 수사만 제대로 되고 정리가 제대로 되면 이 상처를 씻을 수 있는 어떤 대화합조치 같은 것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고 있다”고 말해 국민 대화합조치가 어떤식으로 취해 질 지 주목된다. .
◇연말 보각, 총선후 개각 = 노대통령이 밝힌 연말 개각은 보각수준의 소폭 인사다. 노 대통령은 가급적이면 장관을 오래 일하게 하고 싶다는 지론을 거듭 강조하면서 분위기 쇄신용 개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그러나 “총선이 끝나고 나면 이 원칙을 그냥 주장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총선이 끝나고 또 인사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총선후 대폭 개각 계획을 피력했다.
<박동석기자 everes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