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패치냐, 더블딥이냐’ 5ㆍ31지방선거를 치르고 1일 기자와 만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한 위원은 “우리 경제가 지금 굉장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의 발언에는 비단 선거 결과가 야당의 ‘싹쓸이’로 끝나 정부와 여당의 정책속도가 무뎌지기 때문만이 아니라 각종 지표와 대내외 경제환경이 경기의 방향 자체를 바꿀 수 있을 만큼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는 위기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민간 연구기관의 경제 전문가들도 “우리 경제가 소프트패치(경기 상승흐름 속의 일시 하강)냐 더블딥(일시 상승 후 재하강)이냐의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다”고 공통된 목소리를 냈다. 일부에서는 조기에 대선 국면으로 전환돼 정쟁(政爭)에 휘말리면 경기하강 속도가 가파르고 길게 이어지는 ‘L자형’ 침체의 곡선을 보일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 섞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이날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통계청, 민간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우리 경제 성장률이 상반기 정점을 지나 하반기에는 분기 단위로 3%대까지 내려앉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미 오는 4ㆍ4분기 성장률이 3.7%까지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고 LG경제연구원도 하반기 전체 성장률이 불과 4.0%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이 같은 하강곡선이 일시적인 조정이 아닌 장기적인 흐름으로 굳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재경부의 한 당국자는 “솔직히 걱정은 올 하반기가 아니라 내년 성장률”이라며 “이대로 갈 경우 5%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내년에 5%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분기별로 전분기 대비 성장률이 1.3% 이상으로 올라야 하는데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경기가 적어도 1년 정도의 조정흐름을 거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정부 당국자들과 경제 전문가들은 특히 이 같은 경기흐름이 5ㆍ31지방선거 후유증 등 정치 변수 및 세계 경제의 둔화 움직임과 맞물릴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선거에 나타난 국민들의 요구사항을 접목시켜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정책 추진력이 떨어지거나 일관성이 훼손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교롭게도 지방선거가 끝난 후 글로벌 경제 둔화와 부동산 시장 불안,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등 경제 곳곳에 숨어 있던 복병들이 속속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정쟁에 따른 사회 갈등까지 겹칠 경우 자칫 상승흐름을 이어가는 소프트패치가 아니라 더블딥, 나아가 L자형 침체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