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경제의 묘목'이라면 금융은 그 '토양'이다. 위기 뒤 재기에 성공한 중소기업마다 금융지원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은행-중소기업 런 투게더(Run Together)'라는 캐치플레이즈 아래 은행ㆍ중소기업의 협력 성공사례를 발굴하고 문제점을 시리즈로 진단해 '윈-윈(Win-Win)'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상생 해법을 찾아본다.
하나정밀, 원청사 부도로 미용기기 특허권 받아
국민ㆍ신한銀등 채권은행 필사적 설득 3개월
채권단 첫 中企실사 단행, 42억 신용대출 전환
의료기기까지 사업확장 1년새 매출 3배 육박
“정말 이대로 쓰러져야 하나.”
2003년 12월30일 4시30분, 이준오(50) 하나정밀 사장은 영업 마감 시간까지 주거래은행인 신한은행으로부터 채권 만기연장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지난 9월30일 첫 부도 후 3개월의 유예기간 마저 끝난 것이다. 이제 남은 절차는 청산 뿐. 이 사장은 지난 10년간 키워온 회사를 둘러보며 비통함을 달래야 했다.
피 말리는 한 시간여가 지난 오후 6시. 은행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까지 한 번도 부도난 중소기업을 기술력만 보고 지원한 사례가 없어서 결정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신한은행의 1호 프리워크아웃(사전기업개선작업) 기업으로 선정됐습니다.”
42억원의 은행 채무는 담보 없이 연리 7%의 신용대출로 전환됐다. 2005년까지 매월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2하나정밀의 경영은 이후 급속히 정상화돼 2003년 116억원의 매출은 올해 300억대를 바라볼 정도로 커졌다. 하나정밀은 은행이 기업의 담보력보다는 기술력과 시장성에 근거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해 준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부도위기, '특허권'으로 탈출=
하나정밀의 위기는 원청업체의 부도에서부터 시작됐다. 원청업체가 60억원대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하자 하나정밀도 결국 지난해 9월30일 부도를 냈다. 하지만 하나정밀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바로 60억원의 결제대금을 원청업체가 가지고 있던 미용기기의 특허권과 바꾼 것. 이 선택으로 하나정밀은 하청업체에서 원청업체로 올라섰다.
어차피 원청업체가 부도나 60억원의 빚을 돌려 받지 못할 처지가 된 만큼 특허권을 담보로 은행들을 설득해보겠다는 복안이었다. 당시 이 회사 미용기기의 경우 홈쇼핑에서 한 달 매출이 최고 20억원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아 운영자금 지원만 있으면 몇 개월 안에 회생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은행을 설득해야 하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용기기 시장의 경쟁이 치열할 뿐 아니라 내수경기 침체로 앞으로 매출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지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으로서도 담보가 전혀 없는 부도 중소기업에 특허권만 믿고 대출을 해 주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채권단 '공동실사'로 재기 돌파구 마련=
자금지원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채 3개월의 유예기간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이주훈 하나정밀 사장은 “3개월동안 매일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과 국민ㆍ기업 등 채권은행들을 돌아다니며 필사적으로 설득했다”고 회고했다. 그 노력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민은행 워크아웃팀에서 실사를 나오겠다고 알려온 것. 하지만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의 협조가 필요했다.
25억원대의 공장부지를 22억원에 급히 팔아 신한은행의 기존 부채를 갚는 노력을 보이자 기업구조조정팀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이 나왔고 결국 최종 부도기한을 7일 앞둔 12월23일 두 은행의 공동실사 약속을 받아냈다. 은행권에서는 처음 있는 중소기업 공동실사였다.
운도 따랐다. 부도위기에 몰렸을 때가 공교롭게도 가계 대란에 이은 ‘중기 대란’ 우려감을 이 커지자 각 은행들이 ‘프리워크아웃’ 방안을 강구할 때였다.
실사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특히 승부수로 던진 특허권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회생결정이 내려질 지 속단할 수 없었다. 하나정밀 사례는 말 그대로 ‘시범케이스’였기 때문이다.
◇극적인 회생, 위기경영 체득=
국민은행에서 가장 먼저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줬다. 지난해 12월26일 국민은행은 하나정밀의 채권 20억원을 정상대출로 전환시켜준다는 결정을 내렸다. 공은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으로 넘어갔다. 국민은행이 회생결정을 내려도 주채권은행에서 반대할 경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이다. 당초 12월30일 오후3시쯤 이면 알 수 있을 거라던 결과가 계속 늦어졌다. 결국 최종 마감시간까지 넘긴 오후6시, 최종 '회생'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하나정밀은 은행의 수익성 확보 권고를 받아들여 미용기구에서 가정용 의료기구 제작까지 발을 넓혔다. 올해 모 제약회사와 100억원대의 가정용 의료기기 납품 계약을 체결했고, 일본과 타이완 등으로의 수출도 성사 단계에 이르렀다.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위해 중국에도 坪揚?세웠다.
이 사장은 “위기를 겪은 후 경영에 대한 생각도 많이 달라졌다”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위기관리 능력을 높이고 은행과 협조해 상생하는 방법도 배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