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총기사건 대응 대조적

韓, 민족주의적 접근
美, 이성적 사건대응

조승이씨 추모 - 버지니아공대 노리스홀 앞 잔디광장인 드릴필드에 총기난사 사망자 33명을 위한 추모석이 마련돼 추모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 추모객이 22일 조승희씨의 추모석에 꽃을 바치고 있다. /블랙스버그=AP연합뉴스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관점 및 대응 방식이 양국의 민족성과 문화적 차이 만큼이나 대조적이다. 피해 당사자인 미국이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사건을 마무리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지나친 애도와 자국민 보호에 나서는 등 민족주의적 폐단까지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한ㆍ미간 시각 차이는 사건직후 공식 대응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한국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치권 및 종교지도자들이 잇따라 애도 메시지를 발표했으며 공식 조문 사절단을 파견하는 것까지 검토했다. 이태식 주미 대사는 32일간 금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버지니아공대에서 처음 열린 촛불집회에 사용된 촛불 1만개 역시 주미 대사관에서 제공했다. 국내에서도 시청 앞에서 2,000명이 모여 대규모 촛불집회를 여는가 하면 재미한인단체와 종교단체는 서둘러 모금 운동에 나서는 열기를 보이기 까지 했다. 한국계 이민 1.5세대가 용의자인 사건이라 전 국민적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었지만 단일 사건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이뤄지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대응은 미국사회에서 볼 때 '이상 열기' 그 자체였다.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 시사주간지 타임 등은 한국의 집단적인 죄의식 표현과 추모 열기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한일 월드컵 등을 통해 나타난 한국인들의 단합된 마음과 열기를 한 곳에 쏟아 붓는 응집력이 이번에는 비뚤어진 민족주의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주객이 전도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미국 정부는 이번 사건이 미국 사회 자체의 문제이며 한국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개입하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경계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15년 이상 미국 사회에서 배우고 자란 조씨를 잘못 돌본 미국 사회의 탓이 크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여러 차례 발생하곤 했던 총기사건이 잘못하면 인종차별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는 것을 우려한 탓이다. 이와 관련, 언론들은 총기구입 및 사용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으며 의회는 서둘러 총기구입 자격을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시민들 역시 사건의 피해자들 뿐만 아니라 가해자인 조씨와 조씨 가족에 대한 애도의 뜻을 밝히며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이번 사건이 단순히 조씨 개인의 문제로 발생한 것이 아닌 미국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며 조씨와 그의 가족도 피해자란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근본 원인은 남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 내 자신의 문제로부터 시작됐다는 자기비판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양국이 이처럼 동일한 사건에 대해 비슷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양국간 역사의식과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 시민권은 없지만 미 영주권자인 조씨를 사실상 미국인으로 취급하며 자국 내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조씨의 국적이나 인종 보다는 사건 자체의 발생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한 민족, 한 핏줄을 유난히 강조하는 단일민족의 뿌리를 둔 국가이다. 때문에 조씨를 이민 1ㆍ5세대 한국인으로 보고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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