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리는 해법…앞길가늠 어렵다
현대건설 자구방안표류 안팎
‘어떤 상황에서든 현대건설은 포기할 수 없다.’
현대가 6일 발표한 ‘자구안’의 핵심이다. 이날 현대는 정부ㆍ채권단이 요구하는 우량계열사 매각 등 ‘특단의 자구안’대신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중공업과 현대전자 지분을 매각해 건설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현대건설에 대한 정몽헌(MH)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의 뜻을 밝힌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을 매각하면 6일 시세로 5,500억원을 마련할 수 있다.
현대는 “이 가운데 일부를 건설에 긴급수혈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밝혔다. 그러나 현대사태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자구방안이 왔다갔다 하는데다 그나마도 채권단에서 볼때 ‘본질과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
이에따라 채권단에 제출한 방안에는 보다 ‘큰 것’이 포함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왔다갔다하는 현대
6일 오전 현대건설 임원은 “MH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지분을 매각, 현대건설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투자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오후 늦게 이를 뒤집었다.
현대 구조조정본부는 “정몽헌 회장은 평소 사재출자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으로 현대건설 유동성에 기여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보유주식을 어떤 형태로 정리할 것인지를 확정하지 못했다”며 “따라서 정 회장의 보유주식 전량매각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현대상선이 보유한 건설과 중공업 주식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이와관련, 현대측은 “MH가 보유하고 있는 그룹내 계열사의 지분도 매각하되 아직 규모와 시기는 결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에대해 현대상선은 “구조조정본부의 발표와 관련, 어떤 검토도 한게 없고, 할 계획도 없다”고 발표했다. 상선측은 “이는 김충식 사장이 몇차례 분명히 확인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이에따라 현대사태는 한치앞을 알수 없는 안개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MH 사재출자 왜 번복했을까
현대측은 “당초 발표과정에서 와전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오너의 사재출자라는 민감한 발표내용이 뒤바뀐 것을 단순히 ‘실수’로 돌리기 어렵다.
이와관련, 현대주변에서는 정부가 현대와의 협상과정에서 MH의 사재출자 방안을 골자로 한 자구안에 ‘비토’를 놓은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재출자는 기본이고 그외에 즉각 유동화가 가능한 추가 자구안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일부에서는 현대가 정부의 고강도 압박을 일시적으로 면하기 위해 MH의 사재출자로 국면전환을 기도했으나 예상만큼 정부와 시장의 반응이 좋아지지 않자 일단 유보시켰다는 관측도 있다.
현대측은 여전히 ‘검토중’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매각시기와 규모를 확정짓지는 못했지만 전량 매각은 분명히 검토대상에 들어가 있다는 설명이다.
◇불가피한 추가자구안
현대는“아직 확정된게 없다”고 발표했지만 정몽헌 회장의 사재출자, 서산농장 매각을 비롯 추가 자구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 관계자도 “현대상선 보유 중공업 전자 지분 매각과 서산농장 매각으로 5,000억원 이상의 유동성이 현대건설에 지원될 것”이라며 “이외에도 추가 자구안을 마련해 조만간 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어떤 내용이 자구안에 포함될지는 현재로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추가 자구안의 가능성은 지금까지 현대가 내놓은 자구안으로 채권단들의 지원을 얻어내기 힘들다는 점에서 더욱 높아진다.
이와관련, 재계에서는 정부와 채권단의 요구처럼 주요 계열사 매각,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사재출자 등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있다.
현대 계열사는 모두 24개사이며 주력계열사는 건설을 제외하고 전자, 중공업, 상선, 금융(증권, 투신증권, 투신운용)등이다. 따라서 자산가치가 높은 비주력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주력 계열사의 주요 사업부문을 정리할 경우 현대건설 유동성 확보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논리다.
◇현대가(現代家)의 지원 가능성
현대건설의 향방에서 또하나의 변수가 가족의 지원여부다. 6일 아침 서울 계동빌딩에서 감지된 새로운 현상의 하나는 정몽준(MJ) 현대중공업 고문의 움직임. 이날 오전 그는 MH와 30분간 독대, 깊이있는 얘기를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이 소위 ‘왕자의 난’이후 공개적으로 만난 것은 이날이 처음. 이 모임에 대해 현대는 “MJ가 정부의 뜻을 정확하게 파악, MH에 전달했고, 그 이후 자구방안이 나왔다“며 MJ가 현대건설 사태에 깊이 개입했음을 시사했다.
MJ는 다른 가족들 보다 적극적으로 사태수습에 나서고 있어 건설사태의 해결 가능성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MJ뿐 아니라 현대가의 사람들은 건설을 살려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특히 정부와 채권단이 지난주말부터 노골적으로 가족들이 건설을 도와야 한다고 압박을 가하고 있어 강건너 불 보듯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상황.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정몽구(MK) 자동차이 아직 협조를 거부하고 있고, 위성그룹들의 대다수 기업의 사정이 건설을 도울 여력이 없다는게 문제.
MH는 작은 아버지인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상영 KCC회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발에 그치긴 했지만 정상영 회장은 가족회의를 주선하기도 했다.
채수종기자
입력시간 2000/11/0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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