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사의 도덕적 해이

“모두들 시장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자기만 살겠다고 빠져나가면 되겠습니까. 도덕적 해이가 심각합니다.” 최근 투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카드채 대책과 관련해 프랭클린템플턴투신이 카드채의 만기연장을 거부하는데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모두 죽는다”라며 “차라리 한국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요즘 시장을 바라보는 투신업계의 절박한 인식을 대변한다. 실제로 한 회사라도 만기연장을 거부하고 상환을 요구한다면 결국 카드사도 투신사도 다 망하는 공멸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에 앞서 생각해봐야 될 게 있다. 이번 정부의 대책은 시장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왔다. 시장의 해결방법은 명확하고 단순하다. 고객의 환매요구에 모두 응해주면 되는 것이다. 템플턴은 그동안 쇄도한 환매 요구에 100% 응했다. 그 결과 수탁액이 감소해 회사는 어려워졌겠지만 고객과의 약속은 지킬 수 있었다. 또 다른 외국계인 슈로더투신은 지난해 10월 이후 카드채를 하나도 보유하지 않고 있다. 위험하다고 판단해 펀드에 편입시키지 않았고 그래서 이번 환매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와는 달리 국내 투신사는 지난해부터 카드채를 집중 매입했다. 카드사의 신용위험이 증가하는 것을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펀드 수익률 경쟁에 치중해 이번 환매사태의 단초를 제공했다. 또 환매가 쇄도하자 이번에는 “환매에 응하다가는 망한다”라며 환매를 유보했다. 투신이 망하면 한국의 금융시장은 사라진다는 논리도 폈다. 교과서적 논리대로 라면 시장에서 살아 남기 힘든 회사는 망해야 된다. 리스크를 관리하지 않는 회사,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회사는 시장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고객과 남은 시장참여자가 피해를 입지 않는다. 국내 투신사는 지금까지 환매 유보에 대해 최소한의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정녕 누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는 것인가. <한기석기자 hank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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