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시장의 틀이 바뀌고 있다.
환경이 변하고 가격이 변했다. 수요는 좀처럼 늘지 않고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시련이 한꺼번에 닥친 형국이다. 앞으로도 더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변화의 물결은 공급자(보험회사)와 소비자(계약자)에게 동시에 닥치고 있다.
보험회사들은 사상 처음인 마이너스 성장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불안해하고 있다. 신규 판매가 극도의 부진을 겪고 있는 와중에서도 지난 8월부터 기본보험료가 인하됐다. 더욱이 올 연말까지 보험료를 더 내려야 할 형편이다. 작아진 파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한층 뜨거워질 전망이다.
이 와중에 건설교통부가 들고 나온 자동차보험 개선안은 4개월째 업계의 골머리를 짜고 있다. 자동차보험에서 나오는 돈의 일부를 건교부 소관으로 사용하자는 내용이다.
소비자들은 소비자들대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상황이다. 범위요율제가 도입되고 내년부터 교통범칙자 보험료 할증제도가 시행되면 양질의 운전자는 혜택을 보지만 보험료부담이 커지는 운전자도 많아지게 되어 있다.
수요가 없다. 마이너스 성장
자동차보험시장이 줄어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내수부진으로 신차수요가 부진한데다 가계소득 감소로 계약자들이 의무보험인 책임보험만 가입하고 종합보험은 들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동차 수입보험료가 줄어들었다.
98회계년도(98.4~99.3) 들어 지난 8월말까지 11개 손해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영업으로 거둬들인 돈은 모두 2조1,945억원. 지난해 같은 기간의 2조5,655억원보다 14.5%나 적은 금액이다. 11개 회사중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지 않은 회사는 하나도 없다. 기록이 가장 좋은 신동아화재도 마이너스 0.4%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38%이상 마이너스 성장한 회사도 있다.
자동차보험 수입보험료가 줄어들기는 사상 최초. 그동안은 수지는 손해를 보더라도 규모만큼은 매년 두자리수씩 성장해 왔다. 이대로라면 올회계년도중 두자리수의 마이너스 성장도 예상된다. 당초 전망치는 마이너스 3%수준.
문제는 터널의 끝이 안보인다는 데 있다. 지난해 자동차보험 한종목으로만 2,636억원의 흑자를 냈던 손해보험사들은 올해는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보험료인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99회계년도 이후의 수지는 말할 것도 없다.
가격자유화의 끝은 어디에
예기치 못한 IMF사태와 수요격감에도 자동차보험 가격자유화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가격자유화의 골간은 가격 인하. 지난 8월말 기본보험료가 5.7% 인하됐고 올 12월경 추가 인하를 앞두고 있다. 범위요율제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범위요율제란 보험료를 똑같이 받지 않고 사람마다 차등을 두되 일정 범위를 설정한다는 것. 원칙적으로 올려받을 사람에겐 올려받지만 양질의 계약자에게는 보험료를 깍아주는 게 범위요율제지만 인상은 거의 없을 전망이다.
초기 시장점유율 확보경쟁이 일고 덩달아 가격인하 경쟁이 유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범위요율에 따른 가격 인상은 시장 질서가 잡히는 99년 중반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가격자유화는 경쟁심화와 회사간 차별화 현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소형사의 몰락과 업계간 제휴, 합병에 따른 업계 판도 재편까지 낳을 전망이다.
운전자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다
가격자유화로 당장은 보험료가 내리고 있지만 출혈 인하 경쟁이 계속돼 업계의 손실폭이 커지면 보험료가 다시 올라갈 개연성이 많다. 특히 내년부터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한 보험료 할증제가 본격 적용되면 신호위반 등 단순한 교통법규 위반으로 보험료가 이전보다 올라갈 수 있다.
여기에 가격자유화 초기의 시장선점 경쟁에 따른 인하폭 거품까지 걷히게 되면 보험료는 이중삼중의 상승요인을 안게 된다. 운전자들도 안전운행과 보험사 선택에 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부처간 이해 다툼
보험사와 계약자가 모두가 변화의 중간에 서 있는 와중에서도 정부부처간 관할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 건교부 개정안의 골자는 책임보험 잉여금(영업이익)의 일부를 건교부 교통안전기금으로 활용하겠다는 것. 당초에는 의료보수 심의회, 의료보수심사원 설립 등도 개정안의 내용에 들어 있었다.
건교부는 당초 개정안이 소비자단체, 학계 등의 반발로 무산되자 책임보험 잉여금의 일부만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올해 정기국회에 상정할 에정.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와 손보업계는 자율화 추세와 가격자유화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손보업계는 가뜩이나 영업환경에 어려워지고 있는 마당에 정부부처가 부처이기주의 인상을 주면서까지 제도를 뜯어고치자는데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건교부의 입법의지가 워낙 강력해 올 정기국회에서 자동차보험제도의 근간이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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