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令이 안선다

집권말기 각계 이해집단 목소리 거세져
상법·의료법 개정안등 법안·정책 '표류'

집권말기 권력누수 조짐 분위기 등에 편승해 재계 의료계 등 각계 이해집단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정부 령(令)이 서지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 입법예고, 국회 계류중인 상법, 사법개혁법안 등 각종 개혁법안들이 표류하고있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올 대선을 앞두고 정부 정책 신뢰 저하와 각계 전문가 집단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밀리면 죽는다' 식의 극한 투쟁이 결합되면서 사회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본조달 선진화 등 기업환경 틀을 50년만에 바꾸는 상법 개정안이 수차례 공청회 등을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 지난해 10월 입법예고됐지만 재계가 강력 반발하면서 표류하고있다. 상황이 이렇자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상법쟁점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5일 이중대표소송 등 논란조항에 대해 재계입장을 반영하는 상법 합의안을 도출했다. 하지만 합의안의 잉크도 마르기 전인 당일에 다시 재계가 합의를 번복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문가 집단은 기득권에 위기의식이 생기면 타협을 안하는 속성이 있는데 올 대선과 맞물려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이기적이고 극단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며 "정치권이 각 분야의 이해관계와 대립을 조정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사태가 악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갈등해결을 위해 정부는 장기적으로 충분히 각계의 의견수렴을 거쳐 합리적 정책을 내놓고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정책 불신을 씻고 이익집단은 무작정 떼를 쓰면 이익이 돌아온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복지부의 개정 의료법에 반발, 지난 6일 서울시의사회 궐기대회에서 의사가 할복 시위를 하는 등 용인되기 힘든 무력시위 양상도 나타나고있다. 의료계는 개정 의료법이 의사의 기능을 약화시켜 환자에 피해를 준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프리랜서 의사 도입, 간호사 진단권 도입 등에 따라 돈벌이가 힘들어지는 것을 우려한 것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있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외형의 만주화는 이뤘지만 정부나 이익집단이나 상호 이해를 조정하고 협상하는 방식, 즉 실질적 민주화의 토대가 전혀 없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분위기와 각계의 '드러누우면 된다'는 이기적 태도가 악순환 고리를 만들고있다"고 말했다. 교육계도 지난 7일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교원평가제를 내년부터 전면 시행한다고 발표하자 전교조가 거세게 반발하며 집단 연가투쟁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정권 초기부터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사학법은 개방형 이사제 도입을 놓고 보수사학과 종교계가 삭발투쟁 등 강력 반발하면서 현재까지도 국회에서 무기 표류하고 있고 로스쿨, 전관예우 금지관련 법안 등 사법개혁법도 법조계 보수세력의 계속되는 반발로 올 초 국회통과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