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없는 문명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감춰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대가로 카프카스의 바위에 묶인 채 낮이면 독수리에 간을 쪼이고 밤이면 회복되는 형벌을 받았다고 한다. 불은 인간에게 문명을 가져다준 신물(神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 불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불이 불길로 변할 때 사람들이 수백년 동안 이뤄놓은 것들을 한 순간에 잿더미로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길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옛 사람들은 전쟁 및 천재지변으로 인한 목조건물의 화재를 막기 위해 회반죽을 사용했다. 근대 건축물에서는 콘크리트ㆍ벽돌ㆍ석면ㆍ슬레이트ㆍ철강ㆍ알루미늄ㆍ유리ㆍ몰탈 등 상대적으로 불에 잘 타지 않는 ‘불연’ 혹은 ‘난연’ 재료들이 사용됐다. 덕분에 화재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불’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공공시설을 비롯한 건물이나 자동차 내부에 목재ㆍ플라스틱ㆍ천 등이 사용될 수밖에 없고 이들 재료는 불에 아주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기술이 발전하면서 화재시에도 견딜 수 있도록 방화처리를 한 제품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목재ㆍ플라스틱ㆍ천 등을 불에 잘 타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까. 불은 ▦탈 물질 ▦산소 ▦불이 날 수 있는 온도(발화점) 등 세 가지의 요소가 있어야 만들어진다. 하나라도 부족하면 불이 나지 않는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말ㆍ이산화탄소ㆍ할론 소화기 등도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소화기에서 나오는 분말들은 산소를 차단시키고 특수한 소화약제는 타는 물질을 감싸거나 온도를 내림으로써 불을 끄는 것이다. 가끔씩 상식을 초월한 방법이 고안되기도 한다. 한때 유전지역 등에서 발생하는 큰 불을 끄기 위해서 폭발물을 터뜨리는 게 연구된 적이 있다. 이는 불길 주변의 산소를 순간적으로 모두 흡수하게 만들어 연소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화재에 견디는 목재ㆍ플라스틱 등도 비슷한 원리를 이용해서 만든다. 염화암모늄ㆍ인산암모늄ㆍ황산암모늄ㆍ황산알루미늄ㆍ황산나트륨ㆍ붕산암모늄 등을 혼합하거나 코팅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목재에 이들을 바르거나 흡수시켜놓으면 열을 받을 때 단열작용을 하는 피막이 형성된다. 또 열을 흡수하여 온도를 낮춰주거나 암모니아ㆍ탄산가스ㆍ물ㆍ할로겐화수소ㆍ무수황산ㆍ아황산가스 등 불에 잘 타지 않는 기체를 발생시켜 불에 잘 타는 가스를 희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약품처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1,500도가 넘는 고온에서는 오랫동안 견디기가 어렵다. 설사 견딘다고 하더라도 인체에 해로운 유독 가스를 내뿜게 되면 아무래도 그 사용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의 한 발명가는 몇 해 전 섭씨 3,500도의 화염에도 견딜 수 있는 방화제를 개발했으며 이는 화재로 불탄 독립기념관 복원 공사에서도 사용된 바 있다. 이 방화제는 NASA에서 기존에 사용해왔던 불연재보다 더 성능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목재ㆍ골판지ㆍ직물 등에 뿌리거나 발라주면 2년 동안 그 물건에는 불이 안 붙는다고 한다. 이 방화제의 원리 역시 목재나 플라스틱 등의 표면에 산소공급을 차단하고 열 전달을 막는 것이다. 즉 평소에는 액체 상태로 있다가 뜨거운 불길이 닿으면 뻥튀기처럼 부풀어 오르는 광물질을 찾아냈고 이를 이용해 광물질이 부풀어 오른 공간을 진공 상태로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이 진공층은 바깥의 열이 목재나 플라스틱에 전달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글:유상연 -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