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대를 수용할 수 있는 야적공간이 지난해 말부터 꽉 차 이제 발 디딜 곳도 없을 지경이지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고량이 이렇게 쌓인 것은 처음입니다.”현대자동차 신갈 출고사무소 조유근 부장은 “평소 신차가 출고사무소에 머무는 기간은 3~4일 정도지만 이제 일주일 정도로 길어졌다”며 “내수부진이 너무 오래 계속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동차 재고량 비상
지난해 전자ㆍ반도체와 함께 한국경기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던 자동차가 1년 가까이 계속되는 내수부진과 이에 따른 재고 누적으로 심한 속앓이를 하고 있다.
23일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업체의 재고량(총생산대수에서 총판매대수를 뺀 수치)은 10만대를 넘어섰다. 적정 재고 수준인 5만대(15일치 내수 판매물량)를 2배나 초과한 수치다.
재고가 쌓이자 업체들은 생산물량을 모두 수출로 돌리고 있다. 내수차와 수출차의 생산비율을 2대1로 유지하던 현대차 아산공장은 1대1로 수출차 생산비율을 크게 올렸다.
문제는 생산차량을 수출로 돌리는 비상조치도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
미국 등 주요 수출국의 재고물량도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미국 현지 재고는 지난달 1일 현재 98일분(13만1,000대)에서 1일에는 167일분(15만2,600대)으로 급증했다. 적정 재고 대수인 100일분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그래도 수출비중이 높은 기업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내수 위주인 르노삼성은 지난해 말 3일간 조업을 중단하는 등 이미 감산에 돌입한 상태다. 재고차량 중에는 지난해 가을 생산된 모델도 상당수 있어 업체마다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소비진작책 강구해야
재고누적에 비상이 걸린 업종은 자동차 뿐 아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달 초 발표한 재고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섬유(145.6), 의류ㆍ신발(153.9), 음식료(123.9) 등의 업종도 자동차(148.0)와 비슷한 수준의 재고누적을 겪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국내 600대기업의 산업재고는 2002년 5월 이후 21개월 연속 증가했다”며 “국내산업 재고누적이 이미 한계상황을 넘어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코오롱 등 대표적 섬유업체의 창고에도 재고물량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하지만 섣불리 조업을 중단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업체들의 고민은 더 크다. 섬유업체 관계자들은 “2ㆍ4분기 이후 경기가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공장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쌓여가는 재고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고 말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김소림 이사는 “지금과 같은 내수부진이 계속된다면 업체들이 곧 조업단축에 들어가야 할 상황”이라며 “정부가 하루 속히 특별소비세 인하나 할부금융 금리 인하 등의 소비 진작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