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상환 능력 최악… 금리인상땐 경제에 '뇌관' 될수도

■ 가계부채 어떻기에…
빚 증가 → 소비위축 → 성장률 하락 악순환
당국 "통제가능" 불구 이자부담 갈수록 늘어
저소득층 원리금 만기 연장등 특단조치 시급



사실 가계부채에 대한 경고등이 켜진 것은 오래 전 일이다. 정부는 이때마다 '통제 가능하다'며 기우(杞憂)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럼에도 최근 다시 민간은 물론 퇴임을 앞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로 가계부채를 꼽으며 당국의 인식전환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 가계빚이 국가 전체의 실질적인 짐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이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늦어도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돼 더 늦기 전에 사전적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가계부채가 문제인 네 가지 이유=한은에 따르면 가계대출은 예금취급기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말 현재 546조7,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초 기준금리를 2%까지 내린 후에만 30조원 넘게 늘었다. 증가속도야 경제성장에 따른 현상이라고 치부해도 가계빚을 둘러싼 환경은 정말 걱정스럽다. 우선 가계의 '체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소득증가는 게걸음인데 빚은 뜀박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대출과 신용카드 구매 등 판매신용을 합한 가계신용은 712조7,97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4% 늘어난 반면 가처분소득은 1,043조1,988억원으로 지난 1999년 6월(-0.5%) 이후 최저인 1.5% 증가에 그쳤다. 이에 따라 채무상환능력을 표시하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68.3%로 사상 최고치에 이르렀다. 더 큰 골칫거리는 채무상환능력은 내리막인데 금리는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의 가계수지 동향을 보면 지난해 1~9월의 농가를 제외한 가구당 이자지출액(누적액)은 59만8,0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7.8% 늘었다. 통계가 나온 2003년 이후 가장 많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까지 인상되면 가계의 이자부담액은 훨씬 큰 폭으로 올라갈 공산이 크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시중금리는 더 큰 폭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올 상반기 가계의 이자부담이 12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0%나 늘고 앞으로 금리가 1%포인트 올라가면 연간 가계 이자부담이 6조5,000억원이나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리인상이 가계의 빚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소비위축과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귀결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는 얘기다. ◇당국의 폭탄 돌리기=금융당국은 아직까지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금융위는 연초 자료에서 ▦올해 만기 도래하는 일시상환 방식의 주택담보대출이 44조7,000억원으로 전년보다 1조4,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치는데다 ▦만기 연장률도 95%를 넘을 뿐더러 ▦담보인정비율(LTV)이 선진국에 비해 높다며 '가계부채발(發) 뇌관' 우려를 진화했다. 하지만 이는 당국의 처방이 이른바 '폭탄 돌리기'에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실을 미래로 이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금리가 올라가면 부실이 급속하게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많다. 더욱이 만기 3년 이하의 단기대출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주택대출의 평균 약정 만기도 짧아지는 등 위험의 데시벨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옳다. 이 총재가 당국을 향해 "가계대출 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고 당장 정책운영에 문제가 없다고 해서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상황을 바탕에 뒀다. ◇어떻게 할 것인가=당국은 외견상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가계부채의 경고등 색깔이 점점 짙어지자 서서히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18일 국회업무보고에서 저소득층 서민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줄이는 내용의 가계대출 부담 완화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제한적 수준의 대책으로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달 초 나온 금융산업 중장기 비전에서 금융기관별 가계부채 상한선을 설정하라고 권고한 것처럼 기준금리 인상에 앞서 저소득층에 대한 가계대출 원리금 만기연장(리스케줄링) 등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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